[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MBC 라디오 '시선집중' '여성시대' '정오의 희망곡'을 거쳤던 장수연 라디오 PD의 직업 에세이다. 라디오 PD를 꿈꿨던 그가 MBC에 입사했던 개인적인 '영광의 순간'부터 마냥 잘 해내고 싶었던 신입사원의 마음에 균열이 일던 순간, 이 정도면 잘 하고 있다고 정신 승리 기술을 터득해내기까지의 순간순간이 책에 담겼다.
저자가 전하는 여러 직업적 고뇌 속에서 눈길을 끄는 건 삶을 바라보는 눈길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등 조금은 철학적이고 초현실적이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성찰한다. 라디오 PD인 만큼 라디오에서도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데, 라디오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은 '지친 어른처럼 과거의 화양연화를 남몰래 쓰다듬고 있'는 동시에 '가난한 청춘처럼 아직 전성기를 기다리는 중'이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라디오 생방송 부스의 시계에서도 인생의 흘러감을 느낀다. 시계에 표시되는 건 현재 시각과 프로그램 시작 이후 흐른 시간, 종료 시까지 남은 시간. 저자는 "오늘도 0이 되고야 마는 초록색 시계를 바라보며 이것이야말로 삶에 대한 강렬한 은유가 아니가 생각한다. 매일 반복되는 삶의 권태를 이겨내기 위해선 언젠가 올 마지막을 보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책은 그야말로 PD란 직업의 희노애락을 모두 담고 있다. PD란 직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쁨, 출연 거절로 삐걱(?)거렸던 무명가수가 유명가수가 돼 이제는 출연 제의를 할 수 없는 난감함, 청취자와 다른 PD들을 깜짝놀라게 할 스타 게스트 섭외의 부담 등 라디오PD의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또 이따금 나만 초라하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대단해 보이는 '나는 왜 이럴까' 병증도 솔직히 고백한다. 그럴땐 "왜 이렇게 산다는 게 힘이 드는지 / /왜 이렇게 산다는 게 어려운 건지 / 누구라도 산다는 건 그런지"(김현철의 '누구라도 그런지')를 듣는단다.
개인적으로는 "'피디'라고 생각하지 말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피디라는 직업에 자신을 가두면 프로그램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는 포기하게 된다"는 부분이 인상깊다. 세상만사를 기삿거리인가 아닌가로 판단하게 되는 기자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
장수연 지음 | Lik-it(라이킷) 펴냄│240쪽│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