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기억하지 못할 뿐, 꿈이 없는 밤은 없다 『해몽전파사』
[책 속 명문장] 기억하지 못할 뿐, 꿈이 없는 밤은 없다 『해몽전파사』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03.1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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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하늘은 쾌청하다. 바람이 분다. 바람에 서늘함이 묻어 있다. 집은 비에 잠길 것이다. 수박을 나눠 먹으며 마당의 시원한 빗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일 수는 없을 것이다. 문짝에 팽팽하게 발린 창호지는 오래전에 찢어질 것이다. 살아보지 못한 우리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목이 멘다. 깡통이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40쪽> 

누구나 꿈을 꾼다. 기억하지 못할 뿐 꿈이 없는 밤은 없다. 그 꿈들을 모두 기록으로 남긴다면. 날짜와 시간을 적어서. 위도와 경도를 붙여서. 꿈의 지표면으로 이뤄진 다른 지구. 꿈의 대륙. 꿈의 절해고도. 꿈의 등고선. 꿈의 해안선. <49쪽> 

깨진 머리와 흥건한 피의 양이 상세히 입력됐고 누가 육중한 돌덩이를 들어 올렸지. 너의 머리를 겨냥했지. 깨진 머리에서 삶의 내력이 쏟아졌지. <101쪽> 

그래도 꿈은 삶을 재료로 삼는 것이 아닌가. 내 삶과 무관한 이 충만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173쪽> 

어림해보니 그때 엄마는 지금의 저보다 어렸던 것 같아요. 어린 엄마의 머릴 저도 쓰다듬어주면 좋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늙고 초췌해지셨네요. 헐렁한 환자복을 입고 머리말 폴대엔 주사액 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요. 주무시면서 미간을 자꾸 찌푸려요. 무슨 꿈을 꾸고 계신 걸까요. <187쪽> 

뒤를 본다. 바람이 분다. 페이지가 넘어간다. 알리바마. 알리바마. 일요일에 연락할게. 알리바바. 알리바바. 일요일만으로 이뤄진 시간의 페이지가 바람에 날려 무수히 넘어간다. <247쪽> 

『해몽전파사』
신해욱 지음 | 창비 펴냄│272쪽│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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