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춘천옥 (11회)
소설 춘천옥 (11회)
  • 김용만
  • 승인 2008.03.1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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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량역에 내려갖고 배가 고프니까네 구내매점에 있는 먹을 거를 보며 침만 삼켰능기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뎅캉 김밥을 보니까네 환장할 거 아이가. 그때 쥔아줌씨가 야를 불러갖고, 늬 배고프제? 어데서 왔노? 충청도서 왔다카이 아줌씨가 야를 착하게 봤다이. 그래갖고 야를 자기 동생집에 맡겼능기라. 그래갖고 고교 선생이던 쥔이 야를 부산중학교에 넣었능기라. 느그들 알제? 부산중학이 부산서 최고 일류 중학교 아이가. 그 바람에 서울 용산고등학교에 진학한기라. 용산고는 대한민국 4대공립 아이가. 멍청도 촌놈이 부산중, 용산고를 다녔으니까네 멋진 팔자제. 그란데 그 무렵에 집구석이 팍 망해서....”
  “그래갖고 어찌 됐능교?”
  “인자 얘긴 그만 하자이. 나중에 계속 들려줄테니까네 인자부터 술이나 마시자이.”
  헌구는 막걸리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연거푸 석 잔을 들이키고 난 그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 애인이 모다논 월급으로 우선 수정동 산동네에 방 한 칸을 얻었지러. 게서 우리 애인캉 함끼 지내도록 캤는기라.”
  “함께요?”
  “먼 상간이노. 지놈이 날 배신하갔나. 그라고 우리 애인은 주로 기숙사서 지내고 내가 외출할 때만 들렀다이.”
  “그라믄 애인끼리 만나는 동안 친구분은 우짜고예?”
  “야는 라디오 외판 나갔지러. 그란데 다른 사람들은 실물을 들고 다녔지만도 야는 보증금이 없어갖고 카다로그만 들고 다녔는기라. 그캐도 열심히 뛰니까네 물건을 팔긴 했다이. 하지만서도 돈을 우째 모으겠노. 맨날 부모 걱정에 잠을 설치다가 태종대에 갔지러.”
  “태종대는 와요?”
  “와는 와고. 바다에 빠질라고 그랬제. 하지만도 부모 땜에 자살을 포기해얐는기라. 그래갖고 버스 타고 돌아오는데 라디오에서 경찰관 모집 소식을 들었는기야. 느그들 야가 신체검사할 때 생긴 일 얘기하모 뱃살을 잡을끼다.”
  “먼데예?”
  “합격 체중이 55키로 이상인데 53키로밖에 안 나가는기야. 그캐서 판정관 의사가 물을 마시고 오라캐서 양은 대접으로 세 개를 마시고 달아보니까네 54점 2키로가 나가는기라. 판정관이 엉덩이를 치며, 한 그릇 더! 캤는기라. 퍼뜩 한 대접을 더 마시고 오니까네 저울침이 55키로에 대롱대롱하는기라. 그래갖고 합격했제. 충청도 촌놈이 우째 그리 지독한고. 물론 부모님 땜에 환장했으니까네 뵈는 게 없겠지만서도, 그란데 5분도 안 돼갖고 야가 졸도했는기야. 머리가 삥 돌더란다. 오줌보가 터지고 나니까네 제정신이 들더라캤다. 기용이 늬 내 말 맞제?”  
  “맞다.”
  내가 맞장구를 쳐주었다. 헌구가 씩 웃자 연회장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래갖고....”
  “이제 얘긴 그만 하고 술이나 마시자.”

 
▲     ©송대현
내 말에 헌구가 술잔을 들고 “브라보!”를 외쳤다. 여기저기서 술잔이 부딪치고 브라보 소리가 요란했다.  
  지루한 장마다. 부산 생활도 거의 한 철이 지났다. 지금 살고 있는 방은 관택센터 공장 안에 임시 블록으로 지은 가건물이다. 중앙동 4가 시외전신전화국 옆에 차린 광택센터는 500여 평의 대지에 주차장을 겸하고 있으며 땅은 내 퇴직금으로 세를 얻었고, 기계 구입과 시설비는 헌구가 돈을 댔다. 광택센터는 기계와 손으로 콤파운드를 사용해 자동차를 광내는 곳인데, 헌구가 사장이고 내가 공장장인 셈이다. 
  차가 드나드는 정문에는 내 아이디어로 만든 <관택센터>와 <야간주차장> 간판이 서 있고 공장 건물에는 <전기 콤파운드>란 커다란 글씨와 번개 표시 마크가 그려져 있다. 직공은 5명. 부산에서 처음 시도한 업종이라 잘될지 걱정이다. 며칠 동안 광고지를 들고 자가용마다 찾아다니며 피알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자칫하면 퇴직금마저 날리고 거지꼴 되기 십상이다. 나는 경찰에 들어가기 전의 배곯던 시절이 떠올라 덜컥 겁이 나곤했다.        

  1972년 여름 어느 일요일. 나는 하얀 작업복을 입은 채 직공 3명을 데리고 골프장으로 선전을 나갔다. 차는 헌구의 자가용을 빌리기로 했다. 그동안 직공들과 중심가를 다니며 선전물을 뿌렸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차주나 기사들 입장에서 보면 생소한 서비스 종목인데다 광택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동래에 있는 골프장에 도착한 것은 한여름 볕이 따가운 오후였다. 나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직공들을 시켜 트렁크에서 장비를 꺼냈다. 둥근 그라인더처럼 생긴 광택기와 왁스통, 콤파운드에 희석제를 섞은 연마제, 변압기와 샌더 등을 꺼냈다. 사실 광택기는 기계작업의 모양새를 갖추려는 형식적인 도구에 불과하고 걸레에 콤파운드 연마제를 묻혀 손작업으로 자동차의 래커 칠을 문질러 광을 내는데, 전시효과를 노리기 위해 이것저것 그럴듯한 기계를 꺼내놓은 것이다. 나는 광을 살리면서도 래커 칠을 잘 다듬는 재료를 고르려고 콤파운드에 여러 가지 액체를 희석시켜보았고, 여러 번 실험 끝에 드디어 적절한 재료를 찾을 수 있었다.
  고객들이 푸르딩딩한 액체통을 보며 엄청난 고가품의 연마제인 줄 알겠지만 몇 푼 안 되는 용액이었다. 하기야 우주로 쏘아올리는 인공위성도 알고 보면 별 것 아니다. 자가용이 집안의 큰 자랑거리였던 시절, 그래서 차에 온갖 치장을 해주고 싶었던 시절이라 누구나 자기 차를 반질반질하게 광내고 싶어했다. 요즘처럼 삐까번쩍한 국산차가 쏟아져 나올 때도 아니고, 헌차를 수리해서 새 차로 꾸밀 때여서 단단한 래커 칠을 일일이 광내야 했는데, 걸레로 문질러서 광을 내려면 뼈가 빠질 지경이었다.

  나는 골프장 주차장에 쭉 세워놓은 고급 승용차 중에서 때가 가장 칙칙한 차를 골라 기사에게 말했다. 
  “이 차를 유리처럼 광을 내줄게요.”
  공짜로 닦아준대도 기사는 얼굴을 찡그린다. 만날 물로 세차하고 왁스를 발라도 광을 낼 수 없지만 함부로 기계를 댔다가 칠이라도 까지는 날이면 밥줄이 위험하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 나이 든 기사는 고개를 모로 흔들었다. 그때 20대로 보이는 젊은 기사가 다가와 손가락으로 광택기를 가리키며 어깨를 깝죽댄다.
  “이기 광을 내는 기곈교?”
  “네 그렇습니다.  어느 차든 유리처럼 광을 낼 수 있습니다.”
  “저거도 광이 납니꺼?”
  젊은 기사는 맞은편 줄에 세워진 검은색 지프를 가리킨다. 여기저기 래커 칠로 땜을 한데다 먼지때가 절어 차 전체가 우중충하다.
  “걱정 마세요. 여기 주차한 차 중에서 젤 깨끗한 차로 만들 겁니다.”
  “진짠교?”
  “못 믿으면 본네트만 그냥 닦아드릴게요.”
  “정말인교?”
  “갑시다.”
▲ 김용만(소설가,한성디지털대 문창과교수)     ©독서신문

  나는 직공들에게 장비와 재료를 들려 앞장섰다. 지프의 껍질은 엉망이었다. 일년 내내 세차도 안한 모양이었다. 칠도 거칠고 때도 두꺼워 마치 메마른 논바닥처럼 실금이 퍼져 있었다. 먼저 구경꾼을 모으려고 차 보닛에 광택기를 대는 척하며 스위치를 올렸다. 왕왕대는 소음이 온 주차장에 진동했다. 그늘 밑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화투를 치거나 이야기판을 벌리고 있던 기사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그들은 작업광경을 보러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보닛에 콤파운드액을 묻히고 기계로 갈며 직공들에게는 걸레로 구석구석 닦게 했다. 꺼끌한 래커 칠이 갈리면서 때가 벗겨지자 보닛에 윤이 나기 시작한다. 나는 기계를 내려놓고 직공들이 걸레질한 보닛에 왁스를 칠하고 융걸레로 곱게 닦았다. 어느새 보닛은 거울이 되어 햇살을 튕긴다. 나뭇잎들이 그 거울 속에서 너울너울 춤을 춘다.
  “와아 기똥차데이!”
  “잇찔이구마! 똥차가 왕 됐다카이!”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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