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내가 바뀌면 과거 기억이 바뀐다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리뷰] 내가 바뀌면 과거 기억이 바뀐다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3.0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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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이 책은 철학자와 열아홉 편의 한국 영화 주인공이 대화를 나누는 콘셉트로 진행된다. 다루는 인생문제는 다양하지만, 철학자가 대화를 풀어 나가는 방식은 명확하다.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는 것. "그건 당신 탓이 아니에요"라는 위로나, 나쁜 기억을 지우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미래에 방점을 찍는다. 

책 속에 등장하는 철학자는 대화 속에서 선악무기(善惡無記)라는 말을 꺼낸다. 이는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라는 뜻으로 과거의 사건을 바로 '악'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것이 '선'이었음을 헤아린다면, 과거의 기억은 더 이상 나쁜 것이 아니게 된다. '지금'의 나 자신이 바뀌는 것으로 과거의 기억이 나쁜 것이 아니게 될 수 있다는 것. 

예를 들면 이렇다. 타인을 적으로 간주하는 남성에게 어릴 적 개에게 물렸던 기억은 나쁜 경험이지만, 타인을 아군으로 여기게 되면 당시 현장을 지나던 낯선 아저씨가 자신을 자전거에 태우고 병원까지 데려다줬던 기억이 두드러진다는 것.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거죠?"라고 묻는 내담자들에게 철학자는 "힘들었죠?"라고 위로를 건네기 보다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라고 현실 조언을 전한다. 대체로 그 조언은 내담자가 살면서 한 번도 실천해 본 적 없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철학자가 조언한 대로 실천하다 보면 지금의 곤경에서 벗어날 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대화를 마치거나 누군가는 불현듯 깨달음을 얻고 생활로 돌아간다. 

내담자는 다양하다. 연인과 부부의 사랑에 관해 <봄날은 간다> <내 아내의 모든 것> <건축학개론>, 가족과 부모에 관해서는 <똥파리> <수상한 그녀> <마더> 인생에 관해서는 <리틀 포레스트> <8월의 크리스마스> <터널>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그 후> 인간관계에 관해서는 <버닝>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동주>의 주인공이 내담자로 등장한다. 

그들에게 철학자가 전하는 조언의 핵심은 '자흐리히'(Sachich, 선입견이나 주관의 개입 없이 사물 자체를 직접 파악한다는 뜻)적으로 과거와 미래를 따로 떼어 놓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저자는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 않더라도 과거를 회상하며 후회하지 않고, 미래를 떠올리며 불안해하지 말며 그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기시미 이치로 지음 | 이환미 옮김 | 부키 펴냄 | 360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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