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좌절한 조선의 근대와 중국의 간섭 『감국대신 위안스카이』
[포토인북] 좌절한 조선의 근대와 중국의 간섭 『감국대신 위안스카이』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2.27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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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19세기 중반 제국주의가 새로운 세계 질서로 부상할 때, 중국은 조선을 복속시키기 위해 이른바 ‘조선속국화 정책’을 강력하게 펼쳤습니다. 그 일선에 있던 사람이 바로 ‘위안스카이’(원세개)라는 중국의 관리입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이전 조선속국화 정책의 실질적 집행자였던 위안스카이의 행적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조선의 자주적 개혁의 마지막 기회를 앗아간 감국대신 위안스카이의 행적을 통해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신 냉전 구도’에 관해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홍장(왼)과 원세개(오) [사진제공=한울엠플러스]

원세개는 중국 최근세 역사상 매판적 반동 정치가로 잘 알려진 인물로, 우리나라에서도 추예한 행동으로 유명했다. 그에 대한 연구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고자 하는 우리에게 현 시국과 맞물려 깊은 관심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1880년대 초 조선이 미국을 선두로 한 구미 열강에 나라를 개방하고 자강을 위한 개혁에 착수하는 초기 과정에서, 이홍장을 비롯한 청의 지도부는 이를 지원한다는 구실로 조선을 속국화하고자 강력한 내정간섭 정책을 추진했다.<14쪽>

묄렌도르프 저택 [사진제공=한울엠플러스]

묄렌도르프가 1884년 7월부터 갑신정변을 전후해 청‧일에 대항해 러시아를 조선에 끌어들이고자 활동하던 시기인 1885년 4월 14일, 영국 함대가 거문도를 점령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당시 세계정세에서 보면 영국의 거문도 점거는 중앙아시아에서의 러시아의 남하가 영국령 인도의 전선인 아프가니스탄을 압박한 것과 관련이 있다.<75쪽>

흥선대원군, 천진 보정부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홍장이 대원군을 귀국시키려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민씨 일파의 정적인 대원군을 석방해 고종을 돕고 민비파의 천권을 견제하는 것이며, 둘째, 조선의 정신들이 획책하고 있는 연러 음모를 저지해 일본 세력을 암암리에 방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원군은 보정부에 3년간 억류돼 있는 동안 심지가 변해 정치 문제에 간여할 뜻이 없었고, 다시 사건을 일으킬 여력도 없었다. 일본도 그러한 정황을 탐지했기 때문에 그의 회국을 종용했다.<77~78쪽>

『감국대신 위안스카이』
이양자 지음│한울엠플러스 펴냄│240쪽│14,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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