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페스트에서 코로나19까지… 인류역사에 변화 일으켜온 전염병들
말라리아·페스트에서 코로나19까지… 인류역사에 변화 일으켜온 전염병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2.2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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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과거 전염병이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친 사례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의사 예병일의 책 『세상을 바꾼 전염병』에 따르면, 전염병은 줄곧 인류 역사와 함께하며 큰 변화들을 일으켰다. 

‘팍스 로마나’라 불리며 200여년간 지중해 주변 전역을 통치한 서로마제국의 멸망은 게르만족의 침략 때문이라고 알려졌지만, 의학계에서는 말라리아 때문으로 보기도 한다. 로마가 국토를 넓혀감에 따라 점령국에서 노예들이 들어왔고, 이들과 함께 들어온 모기가 이탈리아반도에 열대열말라리아를 전파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말라리아는 고열과 빈혈, 두통을 유발하는 질병으로, 로마의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렸으며, 군인들의 전투력을 현저히 악화시켰는데, 이 시기 공교롭게도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일어난 것이다.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들이 이슬람교도로부터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8회에 걸쳐 감행한 십자군전쟁의 실패 역시 그 원인으로 전염병이 꼽힌다. 십자군전쟁 당시 십자군은 매 전쟁마다 전염병에 시달려야만 했다. 장티푸스, 세균성 이질 등의 전염병이 비타민C의 부족으로 생기는 괴혈병과 함께 유행했고, 이에 십자군은 피부가 부패하고 검게 변했으며, 잇몸이 썩고 코에서 출혈이 발생했다.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한 십자군은 통일한 이슬람 세력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전염병 중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은 페스트는 중세사회를 유지하던 봉건제도를 몰락시켰다. 페스트의 창궐로 인해 14세기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인 약 2,500만명에서 3,500만명의 사람들이 희생됐으며, 같은 시기 중국에서도 페스트로 의심되는 전염병에 의해 약 1,3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페스트의 발원지로 추정되는 중앙아시아 및 서남아시아 지방에서는 약 2,400만명이 사망했다. 당시 의학으로는 통제할 수 없던 페스트로 인해 민심은 흉흉해졌고, 특히 영주의 지배에서 벗어나 농촌을 버리고 떠나는 하층민들이 급증했다. 한편, 이러한 상황은 페스트로 아버지를 잃은 이탈리아의 작가 G.보카치오의 단편소설집 『데카메론』에 생생히 담겨있다.         

‘마마’ ‘천연두’라고도 하는 두창은 아즈텍과 잉카 문명을 멸망케 했다.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병이라고 할 수 있는 두창은 치료제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사망에 이르는 병이었다. 아스텍 문명의 중심지 멕시코 테노치티틀란에 도착한 스페인 군대가 배에 싣고 온 아프리카 흑인 노예 중에 두창 환자가 있었고, 두창에 대한 면역이 없던 아스텍인들은 전체 인구의 4분의 1을 두창으로 인해 잃는다. 페루의 잉카 문명 역시 두창으로 인해 10만명 이상이 사망했고, 이로 인해 스페인 군대는 잉카 문명을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전쟁에서 패한 적 없는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에 첫 패배를 안긴 것도,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게 한 것도 전염병이었다. 1798년 이집트 원정을 시작한 나폴레옹의 군대는 페스트로 인해 매일 3,40명씩 죽어갔고, 결국 영국군과 오스만 투르크군에 밀려 이집트 원정을 포기해야만 했다. 1812년 러시아 원정은 그 시작부터 유행한 발진티푸스로 인해 시체들로 넘쳐났고, 60만여명의 군사들 중 살아 돌아온 군사는 4만여명에 불과했다. 그 영향으로 프랑스는 세력이 약해졌고, 이후 1814년 영국과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이 파리를 함락시키면서 나폴레옹은 엘바 섬에 유배된다.     

전염병이 없었다면 오늘날 미국의 많은 부분이 프랑스령이 됐을 수도 있다. 1800년에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계곡에 프랑스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를 이용하려 했지만, 1801년에 아이티에서 창궐한 황열은 프랑스 군대를 괴멸시켰다. 나폴레옹은 아메리카 대륙에 계속해서 군대를 보내지만 결국 황열의 기승으로 인해 1803년 아이티에서 철수해야만 했고, 프랑스가 지배하고 있던 루이지애나를 미국 정부에 헐값에 팔게 됐다. 반면, 미국은 황열을 극복하고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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