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을 논하다] 오탈자로 곤장을 맞았다면 믿으시겠어요?
[맞춤법을 논하다] 오탈자로 곤장을 맞았다면 믿으시겠어요?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2.26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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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립과천과학관]
[사진=국립과천과학관]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공개적으로 글을 쓸 때 글의 내용만큼이나 신경 쓰이는 부분이 바로 맞춤법입니다. 사실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100% 지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조차 속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으니 말입니다. 지금은 개정됐지만 얼마 전만 해도 ‘띄어쓰기’는 붙여 써야 했고, ‘붙여 쓰기’는 띄어 써야 했습니다. 그 난해함에 누군가는 “여름엔 (더우니까) 띄어 쓰고, 겨울엔 (추우니) 붙여쓰는 게 어떠냐”고 푸념하기도 했죠.

최근에는 메신저를 통한 소통이 빈번하게 이뤄지면서 편의 지향적인 의도적 오탈자가 다소 허용되는 분위기지만, 그럼에도 SNS에 빈번하게 오탈자를 적는다거나, 공개적인 문건에 실수할 경우에는 따가운 시선이 쏠립니다. 몰라서 틀린 것도 문제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맞춤법검사기 등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죠. 이런 현상은 글을 다루는 출판업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책 한권이 나오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칩니다. 글을 직접 쓴 저자로부터 글의 틀과 전개 방향을 잡는 편집자, 최종 확인을 하는 교열 교정 담당자까지 적잖은 사람의 수고가 들어갑니다. 다만 그런 노력에도 오타와 비문, 띄어쓰기 오기(誤記)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인데, 꽤 심한 오탈자가 나올 경우 편집자들은 “귀신에게 홀렸다”고 망연자실하다가, 급기야 “오탈자 없는 책은 비인간적이다”라고 자위(?)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매월 둘째 주 수요일에 발행하는 <독서신문>의 경우에도 인쇄 전 각 기자가 원고를 돌려가며 세 차례 교열 교정을 벌이지만, 그럼에도 오탈자는 끊이지 않고 속을 썩입니다. 대개 데스크 최종 확인 과정에서 발견되는데, 이럴 때면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이런 경우 몹시 민망하긴 하지만 그때라도 수정하면 됩니다. 책이라면 증쇄할 때 수정해서 다시 찍으면 됩니다. 다만 출판계 역사를 돌아볼 때 누군가는 그 오타로 큰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사진=국립과천과학관]
[사진=국립과천과학관]

대표적인 사례가 고려시대(1239년)에 목판으로 찍어낸 『남명천화상송증도가』와 금속활자로 찍어낸 『직지심체요절』(1377년)입니다. 사람이 베끼어 쓰던 시절에 활자의 등장은 대량인쇄가 가능한 획기적인 발전이었는데요. 편리해지긴 했지만, 그에 따른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초벌 인쇄에서 먹색이 흐리거나 오탈자가 있는 경우 담당자의 급여를 깎거나 곤장을 때렸다고 합니다. 실제로 인쇄본을 찾아보면 글자가 거꾸로 인쇄되거나, 비뚤어진 경우, 글자를 누락해 추후에 적어넣은 경우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해당 도서를 활판인쇄본으로 읽어보실 분들이 많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읽다가 오탈자를 발견하신다면, ‘아~ 누군가가 치도곤을 당했겠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좀 더 현대로 돌아오면 잡지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모든 인쇄물에서 오탈자는 흠으로 작용하지만, 책보다는 잡지의 오타가 좀 더 치명적입니다. 책은 증쇄하면서 바로잡을 기회가 있지만, 한정 수량을 찍어내는 잡지는 오타를 바로잡을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이 일로 식은땀을 쏟아내기도 했는데, 법정스님의 글을 게재했던 잡지 <샘터>의 간부들도 그중 하나입니다.

법정스님 사진과 법정스님이 출간했던 책들. [사진=연합뉴스]
법정스님 사진과 법정스님이 출간했던 책들. [사진=연합뉴스]

과거 법정스님의 글을 연재했던 <샘터>는 스님이 만년필로 쓴 친필원고를 받아다가 컴퓨터로 옮겼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입력 담당 직원은 ‘오타는 곧 죽음’이라는 각오로 작업에 임했다고 합니다. 오탈자가 한자라도 발견되면 “더는 글 못 쓰겠네”라는 법정스님의 최후통첩(?)이 하달됐기 때문이죠. 그럴 때면 편집부 간부가 달려가 석고대죄 수준의 사죄를 드려야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글을 다루는 데 있어 심혈을 기울이라는 법정스님의 가르침이었던 건데, 이는 오탈자를 줄이는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 전해집니다.

무시무시한 오탈자. 오탈자로 곤장을 맞는 시대는 아니지만, 독자의 따끔한 지적이 때론 곤장만큼 아플 때가 있습니다. 몇 번을 확인해도 안 나오다가, 중요한 순간에 마치 숨어있다 ‘짜잔’하고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싫어하는 이성 순위 상위권에 쉬운 맞춤법 틀리는 사람이 포함된다는데, 떠나간 전 남친(여친)과 오탈자 중 누가 더 야속할까요? 글 쓰는 사람에겐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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