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살도 아름다운 이때
주름살도 아름다운 이때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0.02.2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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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어린 날 기억은 세월 속에 차츰 빛을 바래기 마련이다. 하지만 행복했던 추억은 떠올릴수록 아름답다. 버거운 삶에 짓눌려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자락이 건조해질 때면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의 모습을 그리곤 한다. 입가에 항상 인자한 웃음을 띤 선생님이었다. 그분은 어머니 역할까지 감내해야 했다. 당시 입학 적령기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탓인지 예닐곱 살 아이들도 학교에 입학을 했다. 이때 수업 시간에 미처 대, 소변을 못 가려 옷에 배설하는 아이들도 적잖았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배설물을 손수 처리하곤 했었다.

나 또한 학교 입학해서 며칠은 어머니로부터 격리되는 불안감에 울면서 학교를 안 가겠다고 버틴 적도 있다. 그러나 선생님의 웃는 얼굴만 생각하면 마음이 놓여 나중엔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했다.

국어 시간에 받아쓰기 백 점을 맞으면 선생님은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주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다. 그때 선생님의 자애로운 웃음과 따뜻한 손길이 어린 마음에도 마냥 좋았다. 

선생님의 웃음은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 마음을 전부 어루만져 주었을 것이다. 이렇듯 웃음은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묘약이나 진배없다. 미운 사람에 대한 가슴 속의 빙하도 면전에서 상대가 활짝 웃음을 내비치면, 순간 봄 눈 녹듯 녹는다. 오죽하면 옛말에,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라고 했을까.

요즘 거리에 나서면 사람들 표정이 매우 음울하다. 웃는 모습을 좀체 찾아볼 수가 없다. 중국 우한의 코로나19 발병으로 말미암아 지난달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하더니 이제는 지역감염으로 온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다. 사망자도 여럿이다. 또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오백만 개 기업이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됐다고 한다. 식당, 영화관, 대형 마트, 관광지 등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심지어 법원도 2주간 휴정을 권고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국회도 폐쇄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문밖만 나서면 행인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옆집 아주머니도 몰라볼 정도이다. 하루하루가 불안과 공포의 연속이다. 안 그래도 어려워진 경제로 삶이 팍팍한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까지 우리의 삶을 위협한다.

일상이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라면 지나칠까. 이런 형국이니 자연 국민들은 ‘어떻게 하면 이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 온통 이 걱정뿐인 듯하다. 일상이 위태롭다 보니 웃음이 사라졌다. 텔레비전에서 코미디극을 봐도 결코 웃음이 안 나온다. 소설책을 읽어도 무덤덤하다. 그동안 누려온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이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잠식당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역병의 창궐 지인 이웃나라 중국에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외려 그들이 우리나라를 경계하고 있다. 무엇보다 속상한 것은 이 틈을 타서 마스크 및 손세정제를 매점매석해 시중에서 이 제품들이 품귀 현상을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함량 미달의 손세정제, 기능이 검증되지 않은 불량 마스크를 불법 제조 및 유통 시킨 악덕 업자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럴 때일수록 웃음을 잃지 말자’는 생각에 입가에 억지웃음을 지어본다. 이때 누군가가 익명으로 많은 량의 마스크를 기부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한편 확진자가 완치돼 퇴원했다는 반가운 뉴스도 들린다. 확진자들을 위해 몸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 의료진들에게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대의(大義)를 위해 몸 사리지 않고 인정과 의술을 베푼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가 아니던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무자비한 인체 공격에 마스크 한 장으로 맞서야 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떨칠 수는 없지만, 이 뉴스를 대하자 갑자기 희망이 생겼다. 주위의 따뜻한 인정과 의료진의 헌신, 탁월한 의술이 우리 곁에 있는 한 아무리 무서운 전염병도 너끈히 물리칠 수 있다는 의지가 절로 생겨난 것이다. 

이로 보아 희망은 기쁨이다. 기쁨을 얻기 위해선 평소 웃어야 한다면 지나칠까. 그동안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우리의 심신을 이 뉴스의 기쁨으로라도 한껏 녹여볼까 한다. 무서운 전염력을 지닌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우리가 개인위생과 철저한 방역 수칙에 힘쓰면 머잖아 사멸될 것이라는 희망을 지녀본다. 이런 마음에서 그동안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기 위해 눈을 둘러싼 안륜근 및 입술 끝을 위쪽으로 끌어당기는 대협골근을 수축시켜봤다. 그랬더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잠시지만 이런 표정을 취하노라니 행복한 마음이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은 불행의 부재’라고 했다. 쇼펜하우어의 이 언명이 아니어도 행복하기 위해 자주 웃어야 할까 보다. 얼굴의 주름살도 감정에 맞게 생긴다고 했던가. 이즈막은 웃을 때마다 열일곱 개의 얼굴 근육이 움직여 생기는 나의 주름살도 왠지 보기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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