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 역사는 동물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의 숙주로 알려진 '박쥐', 과거 유럽 인구 1/3의 목숨을 빼앗은 '쥐' 등이 대표적인 사례. 이 외에도 '메뚜기'를 온갖 곡식을 갉아 먹었고, 말과 소 등은 교통과 전쟁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어릴 적부터 동물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던 저자는 국가와 사회를 치명적 위기에 빠뜨렸던 의외의 동물부터 역사의 결정적 순간에 사건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끈 동물들을 소개한다. 신화 및 설화 속 동물, 용과 봉황, 기린, 해치 등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곰은 게르만족과 켈트족을 비롯한 서유럽 대다수 민족에게는 오랫동안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물로 인식됐다. 켈트족이 영웅으로 여기는 전설적 인물 아서왕의 '아서' 어원 역시 곰을 의미하는 아일랜드어(켈트어) 'artos'에서 나왔다. 북게르만노르드의 전사 중 용맹스럽기로 손꼽히는 전사들은 '베르세르크'(berserker)인데 이들은 전투를 하는 동안만은 자신이 곰으로 변한다고 여겼다. 싸울 때는 신들린 것처럼, 어떤 두려움이나 동정심도 느끼지 않았다. '베르세르크'라는 단어 역시 이들이 싸울 대 곰(베르)의 모피로 만든 윗도리(세르크:셔츠)를 걸쳤기 대문이라는 어원 해석이 있다. <25쪽>
다시 도깨비의 옛 이름으로 돌아가보자. '돗가비'는 '돗(독)'과 '아비'의 합성어이다. '아비'는 '싸울아비' '장물아비'에서 보듯 직업에서의 고수인 장인을 일컫는다. 도깨비는 또 '돋가비'라고도 하는데, 키가 무척 커서 우러러 보는 거인 같은 존재를 일컫는다. 앞의 '돗'은 불이나 씨앗 종자를 말하는데 도깨비 정체는 바로 이 '돗'에서 드러난다. 또 '독'은 쇠를 녹이는 대장간 용광로 혹은 큰 그릇을 뜻한다. 황순원의 소설 『독 짓는 늙은이』나 장독대 등에 그 이름이 남아 있다. 이를 종합하면, '독아비(돗가비)'는 '철을 다루는 대장장이'를 지칭한다. 도깨비란 말이 '독아비'로부터 나온 것이란 추론을 할 수 있는 대목이다. <48쪽>
암각화에서 발견된 기린은 목이 긴 기린이 맞지만 한중일 동양 문화권에서 기린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 기린이 아니다. 기린은 용이나 해태처럼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 속 동물 중 하나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풀을 뜯어 먹는 기린과는 엄연히 다르다. 일본의 주류전문기업 기린맥주의 상표 속 기린을 떠올려보라. 수컷은 '기麒', 암컷은 '린麟'. 봉황이나 원앙과 같은 암수 조합에 사슴의 몸을 하고 늑대 혹은 용을 닮은 얼굴에 뿔달린 머리, 말의 발굽, 몸에는 비늘이 덮였다. 살아 있는 풀, 벌레는 밟지 않고도 단숨에 천 리 길을 달려가며 하늘을 날 수 있다. 이를 빗대 재주가 뒤어나고 비상한 사람을 가리켜 '기린아麒麟兒'라고 부른다. 수명 또한 천 년이 넘어 모든 짐승의 왕이자 선조 격이다. <104쪽>
한반도의 밤은 호랑이와 표범이 지배했다. (중략) 1701년(숙종 27년) 강원도에서만 화천 지방을 중심으로 6~7년 동안 300여명이 죽었다. 1734년(영조 10년)에는 줄곧 호랑이가 횡행했다. 사람과 가축을 해쳐 8도에서 보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죽은 자가 140여명이었다. 이듬해 강원도에서도 40여명이 죽었다. 1754년(영조 30년)은 경기 지방에 호환이 심했다. 4월 한 달 동안 무려 120명이 호랑이에게 먹혀 죽었다. 영조 때는 궁궐에 호랑이가 출몰한 횟수만도 세 번이나 됐다. 경복궁에 두 번이나 들어왔고, 영조가 주로 거처했던 경덕궁(경희궁)에도 호랑이가 들어올 지경이었다. <115~116쪽>
『재밌어서 끝까지 읽는 한중일 동물 오디세이』
박승규 지음 | 은행나무 펴냄│360쪽│1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