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법정스님이 소유한 단 하나의 가치… ‘독서’
‘무소유’ 법정스님이 소유한 단 하나의 가치… ‘독서’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2.24 0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 19일이 ‘무소유’를 설파한 법정스님(본명 박제철)의 10주기였다.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불필요한 것들은 갖지 않는다”는 그의 생전 가르침은 책으로 남아 지금도 큰 울림을 전한다. 1976년 출간돼 입소문을 타고 스테디셀러가 된 『무소유』만이 아니라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그의 책 대부분이 다시금 인기를 끌며 세상에 ‘무소유’를 알리고 있다. 특히 지난달 <샘터>에서 법정스님이 남긴 명수필을 엮어 펴낸 『스스로 행복하라』는 1월과 2월 계속해서 대형서점의 주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있다.  

그런데 평생 무소유를 가르치고,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고 살아온 법정스님에게도 책과 독서는 ‘소유’의 대상이었음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법정스님은 1955년부터 1970년까지 사촌동생 박성직씨에게 50여 편의 편지를 보냈는데, 이 편지에 가장 많이 언급된 소재가 바로 책이었고, 그 밖의 다수의 수필들의 주요 소재는 독서였다. (해당 편지들은 책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촌동생에게 보낸 편지들에서는 다른 말을 하다가도 꼭 끝에는 독서와 책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말로 하면 ‘기승전 독서’ 혹은 ‘기승전 책’이다. 

“중학 시절에 실컷 놀았으니 이젠 공부할 때다. 열심히 쉬지 말고 꾸준히 하여라. 내 책장이랑들 잘 있다니 마음 놓인다.” (1956년 5월 9일)
“우리 어머님 말 잘 들어 드려라. 내 책들ㅡ그림들도 다 평안하겠지. 쓸데가 있으면 책장 위에 놓인 신문들 써도 좋다.” (1956년 6월 17일)
“한 가지 부탁인데 ‘책장’ 속에 ‘나프탈렌’을 각 단마다 두어개씩 넣어 놓으면, 좀도 먹지 않고 책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책장 서랍에도 두어개씩 넣도록 하고, 나 때문에 또 한 가지 우엣 걱정을 보태게 되어 무어라 말할 수 없다.” (1957년 10월 7일)

그 많은 것을 버렸으면서도, 언제고 책은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현대문학> 9월호가 나왔거든 신자네 누님한테서 돈 꾸어서 사 보내 주었으면 쓰겠다. 대양 서점에 가서 내 이름을 말하면 250환에 줄 것이다. 깨끗하고 험 없는 놈으로 골라 보내라. 8월호가 아니라 9월호다. 종이에 싸서 보내주라.” (1955년 8월 12일)
“먼젓번에 가지고 오려고 했다가 놔두고 온 몇 권의 책이 필요하여 광순이 형 보고 찾아 보내 주라고 했다. 『문학개론』 (백철), 『소설작법』 (정비석), 『조선미술문화사논총』 (고유섭), 『조선미술사연구』 (윤희순) 그리고 노트 두 권이다.” (1957년 3월 30일) 
“옷을 부칠 때 함께 『콘사이스』도 보내주었으면 좋겠다. (중략) 책장 맨 아래 칸에 흰 종이로 책가위한 것인데 『영화(英和)사전』이라 펼쳐보면 쓰여 있다. 일본 글로 된 것이다.” (1957년 8월 27일)

어떤 글에서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글에서는 가을만이 독서의 계절은 아니라고 쓴 것은 그의 독서가 계절을 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가을! 가을이 온다. 좋은 계절이다. 많이 읽어라. (중략) 지금이 아주 공부하기 좋은 나이고, 또 좋은 계절이니까 아무쪼록 열심히 하여라.” (1956년 9월 6일 새벽, 형 철 씀) 
“요즘 독서를 하느냐?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많이 좋은 것을 골라 읽도록 하여라. 어떤 것을 읽는지 알고 싶다. 지금까지 읽은 것은 무엇무엇인지…. 복이 어머니께랑 두루 문안 여쭈어라. 잘 있거라.” (1957년 9월 27일)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못 박아 놓고 있지만 사실 가을은 독서하기에 가장 부적당한 계절일 것 같다. 날씨가 너무 청정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리고 독서의 계절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것도 우습다. 아무 때고 읽으면 그때가 곧 독서의 계절이지.” (『영혼의 모음』 中 「그 여름에 읽은 책」)

법정스님에게 독서는 곧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집에 내려가더라도 착한 벗들과만 놀도록 하여라. 동무의 영향이라는 것이 너희들만 한 때 가장 크니라. 그래서 어떤 사람의 사람됨을 알려면 그와 사귀고 있는 벗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더냐? 그리고 독서를 하더라도 함부로 말고 지은이와 책을 가려서 읽도록 하여라. 책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니까.” (1956년 12월 25일) 
“문학이란 어쩌면 건전한 생활을 위해서 제일가는 방편인지도 모른다. 문학에서 새로운 자기를 발견할 수 있고, 또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1958년 6월 4일) 
“이제는 어떤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가려볼 수 있는 눈이 조금 열린 것 같다. 사람을 대할 때도 그렇고 책을 대할 때도 그렇다. 좋은 친구란 말이 없어도 함께 있는 시간이 넉넉하고 충만하다. 좋은 책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공간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나에게는 좋은 책을 읽는 시간이 곧 휴식 시간이다. 좋은 친구를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담소하며 차를 마시는 그런 경우와 같다.” (『버리고 떠나기』 中 「나의 휴식 시간」)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법정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버리고 남긴 단 한 가지는 책, 그리고 독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