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의 성공에 가려진 ‘한국 상업영화’의 민낯
‘기생충’의 성공에 가려진 ‘한국 상업영화’의 민낯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2.2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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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봉준호 감독이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지난 19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봉 감독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처음으로 국내 취재진과 함께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봉 감독은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긴 생명력을 가지고 세계 이곳저곳을 달리다가 마침내 다시 이곳에 오게 돼 기쁘다. 참 기분이 묘하다”라며 “이런저런 수상 여부를 떠나 전 세계 관객들이 열렬히 호응해줘서 기뻤다. 왜 그렇게 호응해 줬는지는 시간적 거리를 두고 분석해 봐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내 업무는 아닌 것 같다. 내가 한국 영화산업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뚜벅뚜벅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맞는 말이다. 봉 감독이 한국 영화산업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자리에서 다음 영화를 열심히 준비하는 것이다. 문제는 봉 감독이 아니라 ‘충무로’다. 정확히 말하면 매년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고 있는 ‘한국 독립영화’의 반대편에 서서 맥없이 쓰러지고 있는 ‘한국 상업영화’다. 그러니까 지난해 충무로의 전체적인 맥락을 짚기 위해선 송경원 영화평론가의 말처럼 <기생충>의 성공이 아닌 “<자전차왕 엄복동>의 실패”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이병헌 감독 특유의 유머러스한 대사가 돋보인 <극한직업>과 캐릭터 활용이 인상적인 이상근 감독의 <엑시트> 등 주목할 만한 작품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적 상상력 혹은 영화 미학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이 두 영화가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어 앞서 언급한 <자전차왕 엄복동>을 포함, <광대들: 풍문조작단> <악질경찰> <타짜: 원 아이드 잭> <뺑반> 등 괜찮은 제작진과 배우가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엇박자로 관객과 평단의 외면을 받아야 했던 작품들이 너무도 많았다. 요컨대 이 같은 실패가 감독의 책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 ‘진짜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2019년은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영화가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게다가 봉 감독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들어 올리며 한국영화 100주년을 더욱 빛나게 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충무로가 한국영화 100주년을 마음껏 기념하고 축하할 자격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상업영화의 질적 퇴행이 100주년이라는 역사와 <기생충>의 눈부신 성취에 절묘하게 가려졌기 때문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그런 위기 상황이 2020년에도 여전히 지속할 것 같다는 데 있다.

이러한 논의와 관련해 이번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장면은 한국 영화산업의 불균형에 관한 봉 감독의 진심 어린 리액션이었다. 그는 “요즘 젊은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봉준호 첫 장편 연출작)와 같은 시나리오를 시장에 들고 왔을 때, 과연 투자를 받을 수 있고,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냉정하게 해봤을 때 (확신하기 어렵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산업과 독립영화가 평행선을 이루는 부분이 안타깝다. 2000년대 초 내가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을 찍을 땐 독립영화와 메인스트림(산업 혹은 상업영화)간의 상호침투, 좋은 의미에서의 다이내믹한 충돌 같은 게 있었다”며 “그런 활력을 되찾으려면 산업이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가 가진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더 도전적인 영화들을 껴안고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봉 감독의 말을 거칠게 요약하면, 결국 ‘돈’이 괜찮은 ‘영화’로 유입돼야 한다. 발군의 실력을 보인 신인 감독들이 독립영화 진영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류시장으로 연착륙(감독의 자율권 보장 등)할 수 있는 비행기가 다수 확보돼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한국영화 전체가 균형을 이루며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영화란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예술이다. 또한 다수의 사람이 참여하는 ‘협동예술’이기에 그 어느 분야보다 ‘참견’이 많고, 시장에서의 성공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예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산업에 가깝다.

여기서 포인트는 신인 감독들에 대한 ‘시혜적 지원’이 아니다. 기존의 관습을 그대로 답습한 이미지들이 무의미하게 나열된 영화들. 심지어 참혹한 만듦새로 뻔뻔하게 대중의 선택을 기다리는 일부 상업영화가 기획이나 투자 단계에서 걸러져야 한다는 데 있다. 말하자면 엉뚱한 곳에 돈을 낭비하지 말자는 것이다. 100억원 대의 제작비가 투입되고, 뛰어난 배우들이 출연했음에도 무너져야 했던 <자전차왕 엄복동>이 주는 아픈 교훈이다.

기자회견 말미,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 계획을 묻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이정은 배우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잘 찍으면 세계가 알아주는데 굳이 진출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문현답이다. 이 말은 <기생충>을 포함, 지난해 개봉했던 김보라 감독의 <벌새>가 거둔 경이로운 성취와 맥이 닿아있다. 벌써 2020년을 두 달 가까이 보낸 한국 상업영화가 틈날 때마다 되새겨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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