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희덕 시인이 말하는 ‘존재의 이유’ 『저 불빛들을 기억해』
[리뷰] 나희덕 시인이 말하는 ‘존재의 이유’ 『저 불빛들을 기억해』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2.16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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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나희덕 시인은 서문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참다운 안식이란 모든 것이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인생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지난한 여정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행도 그렇죠. 여행의 진정한 가치는 떠나는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니까요.

최근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2020)이 인기입니다. 영화는 루이자 메이 올컷의 동명의 원작 소설을 극화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가져가는 이유는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하는 여인들이 결국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 ‘당도’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점과 선, 면이라는 것을 통해 나와 당신, 세상의 지형과 역학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멀리 떠나는 것도 고단한 인생을 환기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회귀(回歸)의 미학을 써내려갑니다. 살아간다는 것. 돌아간다는 것. 비슷한 말이죠. 한국영화로는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2018)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서울이 아닌 고향으로 ‘돌아오는’ 설정은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실패해서가 아니라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원래 있던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죠.

잃어버린 무엇을 찾는 것처럼 나는 오랜만에 책장에서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소설 『삼십 세』를 뽑아들었다. 서른 살 무렵 내가 밑줄 그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이십 몇 년 만에 펼쳐든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여러 번 소리내어 읽어본다.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일어서서 걸으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다.” 이 문장을 곱씹으며 서른의 나를 일으켜 세우던 날들이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챕터는 ‘서른 살의 아침’. 빛이 아닌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인생의 또 다른 문턱에서 시인은 좌절했지만, 버티고 견딥니다. 그는 “빛보다는 어둠이, 즐거움보다는 통증이 몸과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는”이라고 서른을 표현합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돌아가는’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는데, 좋은 추억과 아픈 추억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스무 살 때 읽었던 소설을 펼쳐보고, 서른의 나를 울렸던 영화를 다시 보고, 마흔의 나를 추동했던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리고 돌아가는 것을 마음으로 즐기는 사람이기를.

『저 불빛들을 기억해』
나희덕 지음│마음의숲 펴냄│268쪽│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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