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그의 영화를 해부하다… 데뷔작부터 ‘기생충’까지
봉준호, 그의 영화를 해부하다… 데뷔작부터 ‘기생충’까지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2.1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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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그야말로 경이로운 기록이다. 봉준호의 <기생충>(2019)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거둔 성과는 101년 한국영화사는 물론 세계영화사에도 길이 남을 업적이 됐다. 봉준호는 오스카에서 ‘작품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 등 총 4관왕을 달성하며 명실상부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우선 <기생충>처럼 ‘비(非)영어권’ 영화가 오스카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수상한 건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감독상의 경우 아시아계 감독으로는 대만 출신의 감독 이안 이후 두 번째인데, 이안의 <브로크백 마운틴>(2005)과 <라이프 오브 파이>(2014)가 모두 할리우드 자본과 배우들로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라는 점에서 봉준호의 감독상 수상은 더욱 값지다.

또한 아카데미가 각본상을 아시아계 감독에게 수여한 것은 봉준호가 처음이다. 이와 함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연이어 수상한 것도 1995년 델버트 맨 감독의 <마티>(1955년 황금종려상, 1956년 아카데미 작품상) 이후 64년 만이며 역대 두 번째다.

4관왕이라는 기록 자체도 화제인데, 이는 월트 디즈니 이후 67년 만에 최다 수상 기록이다. 앞서 디즈니는 제2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 단편 다큐멘터리상, 장편 다큐멘터리상, 단편 영화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다만 이 경우 각기 다른 작품으로 4개의 상을 받았기 때문에 단일 영화로 한 사람이 4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은 봉준호가 처음이다.

봉준호, 영화 <지리멸렬> 스틸컷

봉준호는 단편 데뷔작 <백색인>(1993)과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인 <지리멸렬>(1994)부터 남다른 연출로 주목 받았다. 특히 <지리멸렬>의 경우 사회 지도층의 위선적인 행위를 블랙 코미디로 녹여낸 작품으로, 늘 사회와 계급의 투쟁 문제를 묘사하는 데 골몰하는 그의 영화적 스타일과 소재의 취향이 처음으로 드러난 영화이기도 하다.

봉준호, 영화 <플란다스의 개> 포스터 

이후 봉준호는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를 연출하며 본격적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 미래가 불투명한 대학원생의 히스테리를 블랙 코미디로 녹여낸 이 작품은 <지리멸렬>과 마찬가지로 봉준호 특유의 익살스러운 유머가 짙게 배어 있다. 봉준호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지하 공간이 여기서도 등장하는데, 이 영화의 핵심 무대는 바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다.

<플란다스의 개>는 비록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봉준호는 이 영화로 제3회 디렉터스 컷 어워드 올해의 신인감독상, 제25회 홍콩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상, 제19회 뮌헨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으로부터 큰 찬사를 받았다.

봉준호, 영화 <살인의 추억> 스틸컷

3년 뒤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을 연출하며 500만이 넘는 관객수를 동원, 평단은 물론 대중에게도 인기 있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다. <살인의 추억> 역시 ‘논두렁’ ‘하수구’ 등으로 대변되는 하강의 공간이 등장하며 코미디와 스릴러의 장르적 특성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수작이다. ‘봉준호 자체가 장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하게 된 시점도 바로 이때부터다.

특히 ‘논두렁 롱 테이크 신’ ‘실감나는 외화면의 활용’ ‘감칠맛 나는 대사’ 등으로 희대의 살인 사건을 영화적으로 훌륭하게 묘사해 평단으로부터 큰 찬사를 받았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살인의 추억>에 별점 만점을 선사하며 “한국 영화계가 2003년을 돌아보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라고 극찬한 바 있다.

봉준호, 영화 <괴물> 스틸컷

이후 봉준호는 2006년에 <괴물>을 연출, 1,300만이라는 관객수를 동원하며 천만 감독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국내 정치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꼬집는 동시에 한국과 미국의 미묘한 역학 관계를 괴수 장르로 녹여내며 큰 호평을 받았다.

<괴물> 역시 ‘한강 다리 밑’이라는 지정학적 공간을 활용하며 수직과 하강의 이미지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또한 영화 시작부터 한밤중이 아닌 대낮에 괴수를 등장시킴으로써 일반적인 괴수영화의 장르문법을 비틀어 색다른 재미와 감흥을 선사했다.

봉준호, 영화 <마더> 스틸컷

다음은 봉준호가 2009년에 연출한 <마더>이다. 김혜자와 원빈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스릴러라는 장르의 외피를 두른 예술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 관객이 보기엔 심오하고 난해한 측면이 있다.

‘자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뒤틀린 모성애’가 뛰어난 영화 언어로 구현된 <마더>는 김혜자의 분열적인 연기가 특히 눈길을 끈다. 황량한 갈대밭의 오프닝 시퀀스와 관광버스 안 춤판이 벌어지는 엔딩 시퀀스에서 어딘가에 홀린 듯 춤을 추는 김혜자의 몸짓은 가히 압도적이다.

봉준호, 영화 <설국열차> 스틸컷

다음은 봉준호의 첫 외국어영화인 <설국열차>(2013)이다. <기생충>이 계급의 문제를 수직의 이미지로 다룬 영화라면 <설국열차>는 그것을 꼬리칸과 머리칸으로 은유되는 수평의 이미지로 묘사한 영화이다.

크리스 에반스, 에드 해리스, 틸다 스윈튼, 제이미 벨 등 유명 할리우드 배우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설국열차>는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는데, 935만이라는 관객수를 동원하며 다시 한 번 봉준호의 저력을 입증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봉준호, 영화 <옥자> 스틸컷

다음은 넷플릭스에서 제작 및 배급을 맡아 화제를 모았던 <옥자>(2017)이다. 봉준호의 두 번째 외국어영화이며 SF와 어드벤처가 혼합된 장르적 특성을 보인다. 인간과 동물의 사랑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으며, <플란다스의 개>와 <괴물> 이후 동물(혹은 괴생명체)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세 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옥자> 역시 주인공이 ‘산골에서 도시로 내려간다’는 설정과 ‘지하 도살장’ 등 하강과 수직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영화이다. 개봉 당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았지만 ‘넷플릭스 영화’라는 꼬리표 때문에 예술영화를 추구하는 관계자들로부터 반감을 사게 된다. 뤼미에르 극장에서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 야유가 쏟아져 영화 시작 8분 만에 상영이 중단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봉준호, 영화 <기생충> 스틸컷

마지막으로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자 제92회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기생충>이다. 연이은 두 편의 외국어영화에서 다시 한국영화로 복귀한 봉준호는 <기생충>에서 빈부 격차로 인한 계급 투쟁의 문제를 다뤘다. 특히 이를 ‘반(半)지하’라는 한국 사회의 특수적인 공간과 연결시키며 영화적으로 훌륭히 묘사했다.

이와 함께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에서 동일하게 발견되는 ‘틸트 숏’(카메라의 수직적 움직임)과 홍수로 인한 재난 상황을 ‘부감 숏’(내려찍기)으로 촬영한 방식은 영화의 주제와 카메라의 움직임이 긴밀히 연관되는 대단히 상징적인 작법이다.

또한 <기생충>은 장르영화의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장르의 자장에서 탈주하는 면모를 보이는데, 이는 칸과 아카데미의 최고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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