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자기는 아빠가 없다고 말했다. 막냇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나올 즈음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고. 그때 친구가 입에 뭔가를 집어넣고 오물거렸다. 입술이 꿈틀거릴 때마다 예쁜 소리가 났고 양쪽 볼이 번갈아 가며 볼록거렸다. 사탕인가? 하지만 친구의 입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과일 향이나 설탕 냄새 같은. 여자가 아는 친구라면 자기 집을 찾아온 동무에게 사탕 한 개쯤은 줄 수 있는 아이라 믿었다. 그 믿음대로 친구가 여자에게 물었다.
"덥니?"
여자는 응, 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아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친구가 옆에 놓인 분홍색 직사각형 틀을 여자에게 무심히 건넸다. 분홍 틀에는 꽃 모양의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고, 그 안에 반질반질한 갈색 빛깔의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여자는 누룽지 사탕이냐고 묻고 싶었으나 묻지 않고 한 개를 꺼내 입에 넣었다. 그것은 짐작과 달리 차디찬 얼음이었다. 보리차로 얼려서 보리차 맛이 구수하게 나는. 하지만 여자에게는 단맛이 나는 사탕처럼 느껴지던 놀라운 순간이었다. 여자는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어디서 샀어?"
친구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다가 집에서 만든 거라고 말했다. 여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어떻게? 호기심 가득 찬 눈빛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는지 친구가 영화 보는 걸 단념하고 여자를 부엌으로 데리고 갔다. 부엌 역시 천장이 낮았다. 시커멓고 지저분한데다 어수선한 느낌까지 났다.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친구는 아까 것과 똑같이 생긴 꽃무늬 틀에 보리차를 부었다. 그러고는 냉장고 위 칸을 열었다. 천장이 얼마나 낮은지 냉장고가 바듯하게 닿아서 문을 열때 천장에 스치는 소리가 기괴하게 났다. 친구는 물이 흐르지 않게 조심하며 그 안에 틀을 넣었다. 활짝 열린 냉장고 안에서는 차고 하얀 냉기가 입김처럼 뿜어져 나왔다. 친구는 여기다 물 대신 딸기 우유를 넣고 얼리면 딸기 사탕이 만들어지고 커피를 부으면 커피 사탕이 된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막대가 꽂혀 있는 길쭉한 틀을 보여 주며 이걸로는 아이스바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해줬다. 한여름에도 차가운 얼음을 맛볼 수 있다니. 그것도 집에서. <48~49쪽>
『당신의 외진 곳』
장은진 지음 | 민음사 펴냄│324쪽│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