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적경寂境」
신 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 오는 아츰
나어린 안해는 첫아들을 낳었다
인가人家 멀은 산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즞는다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적경寂境 고요하고 평온한 지경 또는 장소.
산국 산후에 산모가 먹는 국. <42쪽>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출출이 뱁새.
마가리 '오막살이'의 평안 방언.
고조곤히 '고요히'의 평북 방언. <99~100쪽>
「멧새 소리」
처마 끝에 명태明太를 말린다
명태明太는 꽁꽁 얼었다
명태明太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明太다
문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117쪽>
『정본 백석 시집』
백석 , 고형진 (엮음) 지음 | 문학동네 펴냄│376쪽│16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