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발도르프학교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교육장관 회의에서 21세기 대안학교의 모델로 선정된 교육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과천자유학교가 첫 발도르프학교로 문을 열었는데, 8년간 교사 한명이 담임을 맡는 것이 특징이다. 과천자유학교에서 '엄마 같은 교사'로 8년간 아이들을 돌봐온 저자는 아이들과 나눴던 소중한 추억을 소개한다.
내가 발도르프교육을 처음 알게 돼 열병을 앓듯이 알고 싶고 배우고 싶어 여기저기 찾아다니던 1997년, 바로 그해에 태어난 아이들이 내가 8년을 함께할 내 학생들이 됐다. (중략) 아이들은 내 안내에 따라 차례대로 앞으로 나와서 칠판에 역사적인(?) 곧은 선, 굽은 선을 그렸다. 모두 주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시해.", "이게 무슨 공부야!", "촛불을 왜 켜지?"라며 수업을 방해하는 말이 오가고, 야무진 여자아이들의 눈총과 노여움이 뒤따랐고, 주먹과 발로 서로 때리는 시늉을 해가며 소란스럽게 떠들었다. (중략) 첫 만남, 첫 수업은 좋은 교사가 되는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내 생각이 얼마나 추상적이고 안일했는지, 아이들과의 작업을 장밋빛으로 상상한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여실히 알게 해줬다. <11~12쪽>
어려서부터 아이들의 감각이 온전하게 발달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TV, 휴대폰 등 전자 매체에 무분별하게 노출시키지 않도록 부모님들과 합의를 한 터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자 매체가 너무도 노골적으로 아이들을 유혹한다. 버스나 전철을 타도, 웬만한 식당이나 심지어 거리에서도 아이들은 너무도 쉽게 전자 매체를 만날 수 있다. (중략) 아이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노링와 노래로 차 안을 들썩거리에 했다. 첫날이라 지치지도 않는가 보다. 졸지도 않는다. 운전기사 아저씨께서 이런 아이들은 처음 본다고 칭찬을 쏟아내신다. 요즘 아이들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저희끼리 얘기도 안 하고 조용해서 적막하기까지 한데, 얘들은 기운이 넘치고 이맘때 아이들답다고, 당신도 덩달아 여행가는 기분이라고 하신다. 내 어꺠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86~87쪽>
나들이 시간 산길을 걸을 때 슬쩍 다가와 손깍지를 끼며 "있잖아요, 선생님, 어제 우리 엄마, 아빠가요…"하며 집안일을 재잘대던 녀석, 또 나들이 도중 벌에 쏘여서 병원에서 주사 맞고 울다가 아이스크림을 물려주자 좋아라 웃던 녀석들 (중략) 가슴철렁이는 내용의 쪽지를 전해줘 교사로서 자괴감을 느끼게 했떤 녀석 (중략) 야영할 때 텐트 밖으로 삐져나왔던 머리카락에 서리가 앉은 줄도 모르고 곤하게 잠들었던 녀석들, 제몸보다 더 큰 수레를 끌고서 아궁이 만들 흙을 퍼 나르던 녀석, 면담할 때 무슨 논리로든 말로 날 이겨먹고 싶어 했던 녀석, 덜 불은 떡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내 생일상을 차려줬던 녀석들. <101~102쪽>
발도르프학교에만 있는 수업 가운데 하나가 오이리트미다. 오이리트미는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리듬'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말과 음악을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해 눈에 보이도록 해주는 예술이다. 오이리트미 수업은 말과 음악에 기반을 둔 동작들을 친구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움직여야 하므로 친구를 배려하고 자신의 위치를 잘 지켜낼 수 있도록 섬세한 훈련과 협력이 필요하다. (중략) 발도르프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두 가지 외국어를 배운다. 청계자유학교에서는 영어와 중국어를 가르쳤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까닭은 다른 언어를 통해서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나무'는 'tree'고 또 '木'이기도 하다. 하나의 생각이 한 가지 개념에 매이지 않는다. 외국어를 통해 아이들은 새로운 모습. 새로운 느낌으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 <152~153쪽>
『모두가 배우는 발도르프학교』
이은영 지음 | 책숲 펴냄│218쪽│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