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김자경 수필가, “나의 마음에 안식을 주는 책”
[책 속 명문장] 김자경 수필가, “나의 마음에 안식을 주는 책”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1.29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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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들꽃의 향기를 느끼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싶어 중랑천을 거닌다. 그간 무심히 스쳐 지나쳐왔던 들꽃에 매력을 느껴 발걸음을 멈췄다. 

산을 보고 또 보며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의 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다. 마치 비누거품을 풀어 놓은 것처럼 둥실둥실 떠 있는 구름을 만져보고 싶다. 

졸졸졸 쉼 없이 흐르는 중랑천의 물소리가 나의 마음을 붙들었다. 재빠르게 몸놀림 하며 ‘나 잡아보아라’고 하듯 매끄럽게 헤엄쳐 나가는 메기들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나의 발걸음은 도봉산 기슭 위치한 섬진강 메기탕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발걸음은 어느새 식당 문 앞에 이르렀다. 

언제나 그렇듯 등산객들이 식당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앉아서 행복한 웃음의 꽃들을 피우며 왁자지껄했다. 이곳에 오면 사람 냄새를 맡게 된다. 한 번 가버리면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들 속에서 나는 왜 저 사람들처럼 마음껏 웃고 떠들며 신나게 즐기고 살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부터 행동 가짐을 정숙히 하고 말은 아끼고 바르게 해야 한다는 유교적 교육 때문일 거다. 마음껏 소리치며 신나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주문한 메기탕이 나왔다. 왕성한 식욕 탓에 맛있게 먹고 돌아서면서 ‘아무리 가을이 천고마비의 계절이라지만 내 몸이 더 이상 살이 쪄서는 안 되는데!’ 하며 후회를 한다. 그러면서도 ‘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나 보다. 차라리 ‘어떤 책을 읽을까, 어떤 장르의 글을 써볼까’하는 고민을 할 때인 듯싶다. 

어린 시절에 즐겨 읽었던 루시모드 몽고메리의 작품인 『빨간머리 앤』과 루이자 메이올컷 작 『작은아씨들』의 내용전개가 머리에서 펼쳐진다. 이 책들은 늦깎이로 문인의 길을 가는 내게 시작이 반이라는 마음으로 임할 것을 주문하는 듯싶다. 『빨간머리 앤』은 한 고아 소녀가 독신인 남매 애슈와 마릴라에게 입양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몽상가이며 수다쟁이기도 한 고아 소녀가 지성과 감성을 골고루 겸비한 훌륭한 인품의 인격체로 바르게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잘 그려냈다. 

몽고메리는 자신이 경험했던 어린 시절의 일화들을 『빨간머리 앤』의 스토리에 잘 녹여 담았다고 한다. 앤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박수갈채를 보내며 나의 어린 시절도 매치시켜 본다. 오빠 언니가 많다 보니 늘 그들의 보호막 아래에서 살아왔다. 이 나이가 돼서도 언제나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유별나게 빨간머리 앤에 관심을 갖게 됐고 고아이면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앤의 모습이 늘 흠모의 대상이 됐다. 

또, 『작은아씨들』을 통해선 네 자매의 오순도순 성장해 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나 역시 많은 자매들 속에서 성장해왔기에 작은아씨들의 언행에 호기심을 가지고 봤다. 우리 자매들의 경우도 각자의 개성들이 강하고 성격들이 제각각이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며 열 손가락을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씀으로 우리를 차별 없이 키우셨다. 특히, 어머니는 육체는 쇠약하셨지만 정신세계가 바다같이 넓고 하늘같이 높았다고 우리들은 추억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사색에 잠겨본다. 나와 오빠들의 관계가 각별하게 돈독하다고 친구들은 말한다. 그 시절 아들딸 차별 없이 자랐기에 우리는 권위의식 같은 것을 갖지 않고 무조건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살아왔다. 그동안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근래, 언니 오빠들 네 분이 요양 병원에 입원하셨기에 새삼 우리의 나이들을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 가을엔 생각과 현실, 이성과 감성의 괴리 속에서 이율배반적 행동을 하지 말자고 다져본다. 잠 못 드는 밤이 찾아오면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해도 뚜렷한 정신세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마음의 안식을 주는 책들을 읽고자 한다. 홀로 피어나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들꽃처럼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이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서…! 

<김자경 수필가 「이 가을엔!」>

『하늘을 쳐다봅니다』
김자경·오경자 외 25인 지음│여울문학회 펴냄│211쪽│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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