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랑을 위한 되풀이』 황인찬 시인 “삶과 치열하게 싸우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인터뷰] 『사랑을 위한 되풀이』 황인찬 시인 “삶과 치열하게 싸우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1.23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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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시인 [사진=오재우 기자]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황인찬의 시는 밤과 같다. 밤은 하루 중 가장 선명하게 내면의 소리가 들려오는 시간이다. 어지러운 낮과 희미한 새벽의 경계에서 밤은 별과 함께 빛난다. 그의 시 역시 그렇다. 어둡지만 빛난다. 그리고 다만 ‘존재’한다.

그의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를 대중없이 펼치다 “그는 이제 내가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고딕」)라는 문장에서 눈길이 멈췄다. 황인찬은 세상의 수많은 말 가운데 고요히 자신만의 길을 낼 줄 아는 시인이다. 그 길에서 피어난 시들은 ‘살아있음’을 맑게 꽃피운다.

그렇다. 인간은 그저 존재하고 살아있을 뿐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다. 황인찬은 그 지점을 건조하게, 오랫동안 응시한다. ‘삶은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인가?’ 혹시나 그를 만나게 된다면 묻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만났다.

Q. 앞선 두 시집 『구관조 씻기기』와 『희지의 세계』가 전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번에 나온 세 번째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 역시 그렇다. 시인의 시가 많은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A.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시라고 하는 양식 자체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찾고 있는 것 같아요. 독자들이 시를 사랑하는 시대가 됐고, 저는 운이 좋았고. (웃음)

Q. 이번 시집을 엮으면서 새롭게 한 마음가짐 같은 게 있는지?

A. 태도 같은 게 좀 변한 것 같아요. 이번 시집이 나오고 낭독회에서 어느 학생이 제게 “시를 더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지 않느냐?”라고 물었어요.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당연히 압박은 있죠. 프로니까. 더 잘해야 하고, 잘하고 싶고. 시를 ‘잘’ 쓴다는 말 자체가 좀 이상하긴 한데 어쨌든 시를 잘 써야 한다는 게 적어도 저에게는 첫 번째 문제가 아니에요. 대신에 제가 쓴 시가 ‘어떤 쓸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러한 태도 변화 덕분에 시나 언어를 대하는 저의 가치관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Q. 비교적 어린 나이에 등단했다.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는지?

A. 원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문창과에 갔는데, 공부를 하면서 소설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웃음) 귀한 가르침을 얻었죠. 사실 대학가기 전까진 시를 알지도 못했어요. 중‧고등학교 땐 그냥 소설만 열심히 읽고 좋아했던 학생이었어요. 대학에서 처음 시를 배웠고, 그 과정에서 시라는 장르의 매력을 알게 됐어요. 그때 불현듯 소설보다 시가 나한테 더 어울리는 장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Q. 시가 더 잘 어울린다는 말은 무엇인지?

A. 제가 문학을 읽으면서 느꼈던 즐거움은 언제나 말로 잘 환원되지 않고, 쉽게 설명되지 않고, 때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지점들에 있었어요. 말하자면 시라는 장르 자체가 그런 측면이 있잖아요? 시는 쉽게 의미를 확정 짓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시가 저에게 더 아름답고, 자유롭게 다가왔어요.

Q. ‘내 인생의 첫 시’는 무엇인가?

A. 제가 2006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그 당시에 소위 ‘미래파’라고 불리는 시인들이 엄청 인기를 끌고 있었어요. 말하자면 이전의 화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를 쓰는, 지금의 시작(詩作)으로 많이 변하는 시기였죠. 좋은데 잘 모르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런 느낌을 제게 처음으로 안긴 작품이 바로 신대철 시인의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였어요. 특히 서시였던 「흰나비를 잡으러 간 소년은 흰나비로 날아와 앉고」가 그랬죠. 이 시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시의 아름다움을 느꼈던 첫 번째 경험이에요.

Q. 처음 쓴 시도 기억이 나는지?

A. 아까 잠깐 말씀드렸다시피 소설을 못 쓰겠다고 생각하고 대학교 1년이 끝났어요. (웃음) 겨울방학 때 집으로 내려가서 ‘소설 쓰려고 왔는데 소설 안 쓰면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빠졌죠. 그 와중에 제가 오르한 파묵의 『눈』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었는데, 그 소설이 너무 좋았어요. 저는 너무 좋은 걸 읽으면 뭔가 쓰고 싶어지는데, 그때 불현듯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소설의 배경이 터키의 ‘카르스’라는 지역이었는데, 「카르스의 눈」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어요. 그게 제가 쓴 첫 시였는데, 그걸 합평 수업 때 제출했어요. 당시 수업을 진행하셨던 시인 선생님이 제 시를 읽고 되게 좋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사람들이 칭찬을 해주니까 조금 더 재미를 붙이게 됐죠. 시를 본격적으로 쓰고 나중에 그 시를 다시 찾아서 읽었는데, 제 첫 번째 시집과 세계관이나 태도 같은 게 비슷해서 무척 놀랐어요.

Q. 이번 신작의 경우 전봉건의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에서 제목을 빌렸다고 들었다.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 전봉건이고 그 이유를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전봉건의 시 중 <독서신문>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시가 있는지?

A. 제가 전후 모더니즘 시인들을 되게 좋아해요. 195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김춘수, 김수영, 김종삼 등의 시인들인데 그들은 문학사에서 워낙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문학적 성취 또한 매우 높은 시인들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 사람들과 같은 시 쓰기를 지금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근데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전봉건이 갖고 있는 시에 대한 태도는 지금 2020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데가 있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저에게는 훨씬 더 현재진행형에 가까운 시인이죠. 전봉건의 시 안에는 언제나 형식과의 싸움이 있어요. 지금 제 시 쓰기에서 중요한 점 역시 그렇거든요. 언제나 삶과 형식과 싸우는 시가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자세를 가장 잘 보여준 시인이 바로 전봉건이에요.

전봉건의 시 중에 「빛」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두 사람이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있고, 입술에 비친 빛에 관해 얘기하는 시인데 여러 감각이 뒤섞여 있는,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시예요. 제가 좋아하는 전봉건의 시 중의 하나예요.

Q. 평소 시를 쓰지 않으면 무엇을 하는지? 시인의 취미 생활이 궁금하다.

A. 시를 안 쓰는 시간에는 시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른 일들을 해요. 시 쓰기만 하는 삶은 불가능하거든요. 시가 돈이 안 되는 일인데, 돈이 안 되는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하면서 보내죠. 사실 취미라고 할 만한 것들을 즐길 겨를이 없어요. 밀린 책들을 읽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챙겨보고 그러면 별로 시간이 남지 않아요. 다른 시인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저는 여가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에요.

Q. 시집의 1부 제목이 ‘이것은 영화가 아니지만’이다. 시 「무대의 생령」 「피카레스크」 「재생력」 「이것이 나의 최악, 그것이 나의 최선」 등에도 영화 관련 대목이 등장한다. 시인에게 영화란 무엇인지?

A. 너무 좋은 영화를 보면 가끔 속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가령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래요. 영화가 기본적으로 시간을 갖고 놀고, 때론 속이면서 진행되는, 비선형적인 구조를 선형적으로 펼쳐내는 예술이잖아요? 그게 좋을 때도 있는데 거슬릴 때도 있나 봐요.

「이것은 영화가 아니지만」이라는 제목은 영화 예술이 갖는 특유의 반복성이 이 시집과 어울리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서 가져온 면이 있어요. 원래 제목을 ‘이건 유튜브가 아니지만’ ‘이건 넷플릭스가 아니지만’이라고 하고 싶었는데, 왠지 말맛이 안 살 것 같아서 영화로 바꿨어요. (웃음)

Q. 개인적으로 「현관을 지나지 않고」라는 시를 감명 깊게 읽었다. 삶과 일상에 대한 시인의 건조하면서도 서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보다’와 ‘듣다’라는 감각이 중요한 시인 것 같은데, 이 시를 쓰면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하다.

A. 제 경우엔 시를 쓸 때 감정이 먼저 가진 않아요. 감정에서 출발한 경우도 거의 없고요. 괴롭고 우울해도 시 쓸 때는 그런 감정이 잠시 없어져요. 음악을 듣다가 어느 순간 집중하면 음악이 안 들리는 것처럼 말이죠. 「현관을 지나지 않고」의 경우 ‘일상의 반복’에 초점을 뒀고, 그 영원한 반복이 어떤 폐쇄적인 느낌과 합쳐졌다고 할 수 있어요. 거실에 갇혀 있었으면 좋겠다는 시였어요. 그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썼어요.

Q. “사랑 같은 것은 그냥 아무에게나 줘버리면 된다. 이 시집을 묶으며 자주 한 생각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이번 시집을 마무리했다.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의미인지?

A. 이 시집 자체가 애당초 양가적인 것들을 표상하는 시들로 묶였어요. 그래서 좀 길어진 측면이 있는데, 사실 시가 완성도를 갖추려면 어떤 때는 태도를 결정지어야 할 때가 있어요. 근데 어느 순간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까 편해지더라고요. 해결되면 해결이 되고, 해결이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시를 놔두는 거죠. 저 문장에도 그런 양가적인 태도가 다 담겨있어요. 사랑이란 끊임없이 계속 베풀어야 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해요.

사랑 자체가 둘로 인해서 가능해지는 관계이고, 긴장이고, 힘 같은 거잖아요?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연인의 공동체’라는 말을 하면서 사랑의 어떤 정치적인 힘의 가능성을 얘기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사랑은 아주 최소 단위의 힘이 발생하는 지점이죠.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은 둘로만 축소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닌 거예요. 둘로 한정 지은 사랑의 영토라는 게 지극히 무력할 때가 있으니까요.

Q. 최근에는 섹슈얼리티의 민주화 혹은 이성애중심주의에 균열을 일으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예술에서도 그런 목소리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시인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A. 사랑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관념이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인간이 양성 생식기관의 생물이고, 그렇다 보니 이분법으로 나누기 좋아하는 사고 체계가 형성됐을 수도 있어요. 어떤 SF 소설을 보면 인간의 성이 한 열네 개쯤 돼요. 그 열네 개의 성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만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데, 그런 경우라면 당연히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랑의 단위도 달라지겠죠.

이성애중심주의가 절대적인 것도, 우리의 삶 자체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저에게 사랑은 당연히 ‘의심해야 하는 것’이에요. 랭보가 “사랑은 다시 발명돼야 한다”고 말했는데, 발명하든 폐기하든 사랑을 다른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는 자세나 태도가 필요한 것만은 사실이죠.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A. 작년부터 벼르고 있는 게 수영을 배우는 거예요. 제가 아직 물에 못 뜨거든요. (웃음) 더 늦기 전에 건강을 위해서라도 수영을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수영이 앞뒤로 시간을 되게 많이 잡아먹는 운동인데, 그걸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Q. <독서신문>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A.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라는 청소년 대상의 그래픽 노블이에요. 드랙퀸 남자랑 뛰어난 재봉사인 소녀가 함께 벌이는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청소년이면 청소년, 어른이면 어른 누가 읽어도 재밌어할 책이에요. ‘나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책이라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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