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엄마는 소능력자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엄마는 소능력자
  • 스미레
  • 승인 2020.01.23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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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가 뭐에요?’

달갑지 않은 질문이다. 확인받을 것도 아닌데 ‘특기’라는 말 앞에서는 얼어붙었다. 특기라는 말은 뜻부터가 모호했다. 취미가 특기 아닌가? 좋아하는 게 잘하는 거 아닌가? 불쑥 드는 궁금증을 접고 칸을 메웠다. 취미를 적을 때엔 망설임이 없다. 독서. 책을 좋아하니까. 그럼 특기는? 역시 독서. 이게 아니면 공상. 물론 낯이 뜨거워 실제로 그렇게 써본 적은 없다.

‘특기’라 함은 특별한 것 아닌가? 실제로 써먹을 만해야 하지 않나? 가슴이 뜨끔하며 동시에 엄마의 한숨 어린 목소리가 떠올랐다. ‘너는 잘하고 싶은 것 없니? 배우고 싶은 건? 남들한테 보일 만한 특기 하나는 있어야지.’ 어릴 때부터 나를 따라다니던 목소리다.

손재주 있는 엄마, 그녀를 닮은 동생과 달리 책만 보던 나는 곰손으로 자라났다. 그림도, 만들기도 보통 근처였다. 그나마 ‘좀 하네’ 싶던 글짓기도 학업과 생업 뒷전으로 밀려났다. 발레도, 가야금도 배워봤지만 즐겁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건 내 자리가 아니었다. ‘나 요즘 가야금 배워. 재밌더라’라고 거들먹거리는 건 가짜 나였다. 가짜 나에게 쓸 에너지와 애정이 있다면, 책 읽고 공상하는 진짜 나에게 주고 싶었다. 그런 10대와 20대를 보내고 특기 하나 없이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고는 종종 느낀 묘연함이 있다. 아이를 안고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는데 눈앞의 풍경은 그대로인 것. 시간이 멈춘 걸까 하니, 그도 아니다. 계절이 오가고 아이는 자란다. 나만 그 자리에 멈춰 선 느낌이다. 이래서‘홀몸’일 때 특기를 만들라는 거구나. 특기 없는 ‘무능력자’인 내가, ‘초(初) 무능력자’가 되어가고 있다 생각하니 쓴웃음이 났다.

세상은 엄마는 영웅이라 추켜세우지만(혹은 압박하지만) 내가 가진 능력은 초라했다. 나는 날지도 못하고 미래를 보지도 못한다. 슈퍼맨의 망토 아닌, 손때 묻은 앞치마에 만족한다. 엄마인 내가 왜 영웅이 되어야 하는지도 사실 잘 모른다. 나는 용을 때려잡고 싶지 않다. 내가 아이와 함께 쓰고 싶은 건, 영웅담이 아닌 잔잔한 수필이니까.

최근 몇 년은 태어나 처음으로 특기로부터 자유로워진 시기였다. 엄마가 되니 누구도 나에게 ‘특기가 뭐예요?’라고 묻지 않았다. 홀가분했다.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가 좋아'고 말한다. 그건 능란히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3개 국어를 말하지 않아도 엄마라서 받는 순연한 사랑이다. 평생을 쫓아다니던 특기의 압박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에게도 소소한 능력이 장착되었다. 내가 대단한 특기의 소유자였더라면, 겨우 이런걸 '능력’이라 생각지는 않았을 테다. 하지만 무능력자에겐 소능력도 반가운 능력. 간과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빠져나가려는 아이를 붙잡고 손톱 깎기, 있는 재료로 뚝딱 세끼 차려내기, 3분 만에 밥 먹기, 온도계 없이 아이 목욕물 온도 맞추기, 세상에서 가장 팔팔한 에너지 덩어리 잠들게 하기, 아이 뒤채는 작은 소리에 깨어나기, 우는 아이 웃기기, 아이가 좋아하는 오만가지의 이름과 특징 외우기.....

대학 시절, 교수님은 사전을 꼭 ‘가지고 다니라’ 당부하셨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전을 들면 예쁜 손가방을 들 수 없으니까. 1kg 남짓한 사전은 나를 지구 중심으로 끌고 들어갈 듯 무거웠으니까.

엄마가 되고는 4kg 아기를 종일 안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1년 뒤엔 12kg 짜리 유모차+14kg 짜리 아기+1kg 짜리 가방을 번쩍 들었다. 그 상태로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하고 계단을 오르거나 전력질주도 했다. 처음 보는 이에게 먼저 말 거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옆자리 엄마에겐 다정히 묻는다. '아기가 참 예뻐요. 몇 개월이에요?’

육아 7년 차가 되니 이제는 뒤통수로도 아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복화술이나 독심술도 한다. 아무 말 못 하던 아이에게 말을 가르쳤고 50cm짜리를 120cm로 자라게 했다. 이 정도면 소능력을 넘은 초능력 아닌가? 혼자서 뿌듯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랄까, 나는 작은 것에 쉽게 감동한다. 미술 작품을 보더라도 전체가 아닌 어느 한 부분의 붓 터치에, 눈곱만 한 화가의 서명에 마음을 뺏긴다. 어제와 다른 햇살에 자체 휴강하고, 꽃 보고 낙엽을 밟느라 지각하는 학생이었다. 흔한 것에서 반짝임을 찾고, 작은 위로에 쉽게 안도한다. 나만의 도락이랄까. 나다움이랄까. 하지만 역시, ‘쓸 데’가 없었다.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아기는 왜 이렇게 느리게 자랄까? 크는 게 확확 보인다면 육아가 이토록 지루하지는 않을 텐데.” 맞다. 24시간 붙어 지내다 보면 아이의 자람은 더디고 지루하다. 지켜보는 주전자의 물은 끓지 않는 법. 인간이 무언가에 흥미를 갖고 집중하는 시간은 8초라던데, 아기는 무려 1년을 기다려야 걸음마를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이 '작은 것에도 쉽게 감동하는 능력’은 유효했다. 내겐 아이의 모든 것이 환희였다. 그애의 사소한 몸짓조차 어여쁘고 신비했다. 아이의 입에서는 예쁜 꽃망울이 터져 나왔다. 무용가이자 시인이이며 작은 철학자인 아이 덕분에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었다. 

물론 그래서 힘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힘든 시절이 이리도 애틋하고 곱게 남았으리라. 이제 알았다. 작은 것에 감동하는 마음 역시 내가 가진 소능력이었음을.

오늘에서야 특기의 뜻을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다. '남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기술이나 기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엄마들의 소능력은 대단한 특기가 아닐 수 없다. 세상에 하나뿐인 한 아이의 엄마로서 갖는 고유한 기술이니까.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남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기술이 맞다. 세상에 난무하는 흔한 특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나에게도 특기가 생겼다. 그것도 쓸 데 있는.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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