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낭만적 사랑과 사회』
[리뷰]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낭만적 사랑과 사회』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1.19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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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라면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단칸방에서 금실 좋게 살 수 있을까? 두 달에 한 번하는 외식조차 부담스럽고, 영화 한 편 제대로 즐길 여유가 없는 생활이지만 부부간의 사랑만으로 알콩달콩 재밌게 살 수 있을까? 반대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집과 차에, 평생 돈 걱정 없이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다면,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상대일지라도 그럭저럭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너무 극단의 상황이지만 이는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법한 가정들이다.

현실에서 대기업 회장의 아들과 그 집에서 파출부로 일하는 아주머니의 딸이 만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것은 정말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각자가 상상하는, 자기 분수에 알맞다고 생각하는 현실적 드라마를 꿈꾼다. 「고진감래(苦盡甘來)」에 등장하는 서울에서 제일 좋은 의과대학에 다니는 잘생긴 ‘상우’나, 지방대에 다니고 키스 하나 제대로 못하지만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민석’은 그 자체로 여대생들에겐 ‘로망’이나 ‘낭만’이 될법한 남자들이다. 그런 두 남자를 저울질하는 ‘유리’는 궁극에는 어떤 사랑을 선택할까.

사랑이라는 것은 그것과 동반되는 여러 가지 외부 상황과 긴밀히 연관되어있다. 원나잇과 동거는 제법 쿨하게 여기지만 결혼의 문턱에서는 상대의 직장과 연봉, 학자금 대출의 유무까지 따지는 젊은 세대들의 마음가짐이 이와 맥이 닿아있다.(지금은 돈이 없어 연애와 결혼을 모두 포기하는 N포세대이지만) 결국 그 어떤 종류의 사랑도 서로의 '낭만'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유리, 같은 것」에서 보잘 것 없는 남자친구에게 밥을 사주고, 같이 자주고, 임신까지 한 친구 ‘혜미’를 바라보는 ‘유리’의 시선에서 알 수 있다. 처음에 유리는 혜미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지만 곧 혜미가 소유하고 있는 물질적 대상(명품 백과 외제차)을 보고는 친구에 대한 연민을 거두고 도리어 자신의 처지를 체념한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오십 평짜리 아파트가 너와 나의 낭만적 사랑을 영위하는데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라는 현실에 유리는 좌절한다.

「유리의 성」에서는 그 씁쓸함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이자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로스쿨의 학생인 ‘그’에게 하늘과 땅을 걸어야 하는 ‘유리’의 고군분투는 실로 애처롭다. 표정관리, 식사 속도, 구체적 잠자리 스킬까지 섭렵했지만 유리는 결국 현실적 드라마의 주인공에서 탈락한다. 마지막에 유리가 그에게 선물 받은 명품 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노심초사하는 모습과 동시에 '그'와 '자신'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자위하는 모습은 외면하고 싶지만 끝내 너와 나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각 이야기의 제목을 차용해 표현하면 결국 사랑이란 「유리의 성」안에 있는 수많은 「유리, 같은 것」들이 금 가는 것 혹은 깨어지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끊임없이 보호하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같은 듯 다른 세 명의 ‘유리’는 우리의 얼굴이며 우리의 목소리다.

제 아무리 고귀하고 낭만적인 사랑이라도 그것은 결국 현실의 위아래에 있다. 즉, 저마다 꿈꾸는 낭만적 사랑은 실현성이 적을 뿐 우리의 삶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낭만’만으로는 이도 저도 안 되는 사랑이 될 게 뻔하지만 그래도 ‘낭만’없이 사랑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모른다. 낭만적 사랑이라는 것도 결국은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252면│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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