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돈’의 실체를 밝히다 『돈의 정석』
[책 속 명문장] ‘돈’의 실체를 밝히다 『돈의 정석』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01.18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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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지갑에서 20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살펴보자 좋은 종이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부터 눈에 띌 것이다. 실수로 옷과 함께 세탁기에 넣어 빨아도 망가지지 않을 만큼 섬유질 함량이 높은 고급 종이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종이일 뿐이다. 종이에 인쇄된 그림이 멋지긴 하지만 명화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아마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 지폐를 내밀 경우 이에 상응하는 뭔가를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이 지폐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다는 점일지 모른다. 금이나 은 같은 것들과 교환을 보장한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종잇조각인 것이다. 미국 화폐를 발행하는 연방준비제도 산하 연방준비은행에 이 종이를 가져다 내밀어도 그곳 직원들은 아무것도 내주지 않을 것이다. 일부 연방준비은행 건물, 예를 들어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같은 곳에서는 멋진 박물관을 견학할 수 있지만, 은행 로비에서 20달러 지폐를 내밀며 뭔가 다른 것으로 교환해 달라고 주장하면 이상하게 쳐다보며 건물에서 나가 달라는 요청을 받을 게 뻔하다. 

그렇다면 20달러 지폐의 가치는 무엇일까?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 ‘20달러 정도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바보 같은 말이 아니다. 적어도 보기보다 바보 같은 말은 아니다. 샌드위치 가게에 가면 20달러로 두 사람의 배를 든든히 채울 정도의 음식을 살 수 있다. 식료품점에서는 이 지폐로 닭가슴살 3파운드나 괜찮은 레드와인 한 병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 그리고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종잇조각의 가치에 대해 상당히 세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만일 이 지폐를 길에 떨어뜨리면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주울 것이다.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이렇듯 기꺼이 주울 종잇조각이 또 뭐가 있겠는가? 

이 책은 돈에 관한 책이다. 우리 주머니 속에 든 이 종잇조각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가치를 지니게 됐는지, 그리고 실제 물건을 겉으로 보기에는 종잇조각에 불과한 이것과 바꾸는 괴상한 관심이 어떻게 현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가 됐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책이다. 또한 이왕 시작한 김에 수표를 끊고, 휴대전화를 가져다 대고, 직사각형의 플라스틱 조각을 건네기만 하면 가구, 사무용품, 심지어 자동차까지도 손쉽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묘한 관행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14~16쪽>

『돈의 정석』
찰스 윌런 지음│김희정 옮김│부키 펴냄│522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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