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불평등 사회에 관한 뼈 때리는 코멘터리 『전지적 불평등 시점』
[책 속 명문장] 불평등 사회에 관한 뼈 때리는 코멘터리 『전지적 불평등 시점』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1.0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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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나는 글쓰기와 고전 강의를 하며 수백명의 제자를 만났다. 그런데 3년 전, 제자 한 사람이 “오늘에야 겨우 대학 학자금을 다 갚았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는 나이 마흔에 아이가 둘 있는 가장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0년이 넘도록 계속 빚을 갚고 있었다니! 그 학자금은 정부에서 빌려주는 것인데 이자가 붙는다. 이자로만 수백만~천만원의 돈을 낸다. 최소이율이라 하지만 정부마저 가난한 학생을 상대로 이자놀이를 하는 셈이다. 나머지는 말해 무엇하랴.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제자가 기업에 들어가 하는 일은 인격적으로나 경영학적으로나 한참 부족한 창업주 아들, 딸의 뒤치다꺼리였다. 아니, 이 말은 거짓이다. 뒤치다꺼리에도 서열이 있다. 입사하고 20년 정도 초고속 승진을 해야 그것도 할 수 있다.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제자가 기업에 들어가 하는 일은 엄밀하게 ‘창업주 2,3세 뒤치다꺼리하는 이들의 보조’다. 한마디로 꼬붕의 시다바리다. 

제자의 한마디에 나는 생각했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책을 써보자.’
하지만 내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처럼 거시적 시각으로 부익부빈익빈의 역사를 쓸 수는 없다. 『주적은 불평등이다』를 쓴 이정전 교수처럼 한국 금수저와 흙수저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파고들 수도 없다. 
나는 나의 한계를 잘 안다. 그 한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만이 쓸 수 있는 일에 천착하면 된다. 나는 ‘스토리텔러’다. 같은 팩트를 놓고 누구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해석하지만 나는 이야기로 푼다. 
유머와 해학을 가미한 스토리로 21세기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을 헤집는 것. 
이게 이 책을 쓴 목적이다. 

이야기는 이야기다. 사실도 주의도 구호도 아니다. 그러나 ‘왕좌의 게임’ 시즌 8의 마지막 회에서 티리온 라니스터가 말했듯 “역사는 이야기가 있는 자가 이끈다.” 
나는 되도록 솔직하게 이 글을 썼다. 에두르지 않았고 조심하지 않았고 따지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모른 채 어딘지 불편하고 불안하고 억울한 시민들이 이 책을 읽고 “속이 다 시원하다”고 한마디 해주면 좋겠다. 
만약 당신이 부자와 권력자와 건물주라면 이 책의 이야기 소재가 되는 것에 너무 민감해하지 말라. 당신은 돈과 힘과… 그리고 빌딩이 있지 않나. 

오래전 세상을 떠난 개그맨 김형곤씨가 이런 말을 했다. 
“정치인을 풍자하면 정치인이 불만이고, 경제인을 까면 경제인이 불평한다. 그래서 코미디 소재로 삼을 게 없다.” 
실제로 그는 정치·경제적 소재로 재밌게 희극을 하다 윗선의 제지로 그만두곤 했다. 이 책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시대의 거물을 비롯해 실명의 정치인, 경제인, 예술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니면 아예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화를 내거나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생각 말고 부디 “유머는 유머”로 받아들여 주시길 희망한다. <9~11쪽>

『전지적 불평등 시점』
티머시 R. 제닝스 지음│윤종석 옮김│CUP 펴냄│272쪽│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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