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숨어 있던 광기가 폭발한다! 『우상의 눈물』
[리뷰] 숨어 있던 광기가 폭발한다! 『우상의 눈물』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1.05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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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인간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리 아름다운 존재가 아닙니다. 깨끗함과 더러움, 정당함과 비열함, 천사와 악마의 얼굴이 공존하는 상태. 이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질인지도 모릅니다. 사리에 맞고 바르다 생각했던 일이 비난을 당하고, 반칙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그것이 치세(治世)라는 이름으로 깨끗이 미화된다는 것을. 정의로운 인간이 언제나 세상을 수호하는 게 아니었고, 때로는 간악한 자가 세상의 구원투수로 등판할 수도 있도 있습니다.

악과 악이 뒤엉켜 있는 세상.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은 이러한 사회의 면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소설입니다. 여기에는 흔히 말하는 정의로운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온갖 위선자들, 방관자들만 득실거릴 뿐이지요. 먼저 ‘자율’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담임 선생’과 그의 구상을 실천적으로 도와주는 반장 ‘임형우’,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문제아 ‘최기표’와 그를 따르는 ‘재수파’, 그저 한발 물러나서 사건의 진행을 관망하는 ‘이유대’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중심인물들입니다. 『우상의 눈물』을 관통하는 하나의 중요한 맥락은 바로 폭력이 더 강한 폭력에 의해 억압되고 지배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담임과 형우는 반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기표를 축출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합니다. 기표가 담임의 지시에 의해 체육부실에 내려가 있는 동안, 형우는 교단에 서서 기표네 가정 사정을 반 아이들에게 폭로합니다. 그리고 담임은 교단으로 다가가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교탁 위에 놓습니다. 이 장면은 겉으로 보기에 가난한 학우를 돕자는 담임과 반장의 사뭇 훈훈한 모습이지만 그 이면에는 실로 기표에 대한 엄청난 폭력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형우의 폭로로 인해 기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성적 경향이 드러나게 된(아웃팅, Outing) 성소수자와 같은 꼴이 돼버린 겁니다. 소설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표는 반 아이들에게 판잣집 그 냄새나는 어둑한 방에서 라면 가락을 허겁지겁 건져 먹는 한 마리의 동정받아 마땅한 벌레가 돼버린 꼴이 되고 만 거죠.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하자는 거냐? 기표냐, 아니면 우리들 자신이냐”고 형우에게 따져 묻는 유대의 일갈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로 날아가 버립니다. 그리고 곧장 유대는 “네 의협심을 존중한다”고 말하며 형우의 손을 들어 버립니다. 이 장면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사회의 폭력이 무서운 이유는 실제로 폭력을 행하는 주체의 ‘악함’이라기보다는 그것을 보고도 ‘묵인’하고 ‘방관’하는 유대와 같은 인물이 우리 사회 구성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고 말하는 편지 속 기표의 소리 없는 외침은 비단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공포가 아닙니다. 상생은커녕 공존조차 버거운 오늘날의 한국 사회. 이런 상황이 쉽게 순화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모두가 담임이면서 기표이고, 형우이면서 유대와 같은 비루한 인간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상의 눈물』
전상국 지음│새움 펴냄│424면│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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