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추방된 어머니의 역사 『미혼모의 탄생』
[포토인북] 추방된 어머니의 역사 『미혼모의 탄생』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1.0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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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가족을 위한 희생을 당연하게 요구받던 어머니란 존재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초. 전형적인 어머니 상과 결을 달리하는 다양한 모습들이 대중 문화텍스트 등을 통해 그러졌다. 하지만 그런 변화의 다양함 속에서도 여전히 소외된 어머니들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미혼모'.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했으나 '어머니'가 될 자격이 없는 비윤리적 '여성'으로 낙인찍히고, 아이를 입양 보내고 재활과 훈육을 통해 결혼에 적합한 '정상 여성'으로 돌아가기를 종용받았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겼다. 

2008년부터 5년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자격으로 수많은 미혼 엄마들을 만났던 저자는 "미혼모에 대한 낙인으로 인해 입양을 선택해야 했거나, 어려움 속에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미혼 엄마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바친다"고 말한다. 

1987년 7월 2일 자 "미혼모가 늘고 있다"는 제목의 '경향신문' 보도. [사진=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도서출판 안토니아스]
1987년 7월 2일 자 "미혼모가 늘고 있다"는 제목의 '경향신문' 보도. [사진=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도서출판 안토니아스]

(1960~70년대) 시기는 '미혼모'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때이기도 하다. 국내 입양 기관인 한국기독교양자회가 해외의 친권 포기 상담 전문가를 초빙하며 미혼모 상담 사업을 도입하고 이어 정부 인가 해외 입양 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등이 본격적으로 미혼모 상담 및 보호 사업을 시작한 것을 그 계기로 볼 수 있다. (중략) 당시 대중매체의 보도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보인다. 첫째, 모두 입양 기관과 연계된 미혼모 보호 시설에 머물고 있는 미혼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에 기초하고 있으며 둘째, 미혼모의 인구학적 구성이 연령별, 학력별, 직업별로 고루 분포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장 지대 청소년'이나 '10대 미혼모'로 전형화하고 있고, 셋째, 미혼 모성 보호가 아닌 성교육 등을 통한 미혼모 예방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63쪽>   

근대 핵가족 이미지를 표시 또는 내지 모델로 사용한 1970년대 성교육 교재들. 왼쪽부터 『결혼과 가족』(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중고교생을 위한 성교육』(교육출판사) 표지와 내지 이미지. [사진=도서출판 안토니아스]
근대 핵가족 이미지를 표시 또는 내지 모델로 사용한 1970년대 성교육 교재들. 왼쪽부터 『결혼과 가족』(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중고교생을 위한 성교육』(교육출판사) 표지와 내지 이미지. [사진=도서출판 안토니아스]

1970년대 들어 이화여자대학교의 인간발달연구소와 대한가족협회에서 각각 초·중·고교생을 위한 성교육 교재를 출간했는데, 두 교재는 각각 다른 기관에서 5년의 차이를 두고 편찬된 것이지만 성교육의 필요성과 내용에 대한 이해는 이전 시대와 큰 차이점을 보이지 않는다. 즉 성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 혼전 순결 강조, 성·임신·출산은 결혼 제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의학 및 정신분석학을 근거로 교육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개인들은 성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연애 감정-사랑-약혼-결혼 그리고 성과 출산에 이르는 생애 주기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감정과 몸의 훈육을 경험하게 된다. <154쪽> 

1974년 4월 15일 자 '엇갈린 사회문제:미혼모와 무자녀' 제목의 '경향신문' 보도. [사진=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도서출판 안토니아스]
1974년 4월 15일 자 '엇갈린 사회문제:미혼모와 무자녀' 제목의 '경향신문' 보도. [사진=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도서출판 안토니아스]

1960년대까지 '미혼모'는 일상적 용어가 아니었다. 당시 일부다처제적 관습의 잔존으로 여성의 혼인 여부와 출산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이를 반영하듯 사회 과학 용어로 유입된 'Unmarried mother'의 범주에도 사실혼 또는 소실 관계에서 출산한 여성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당시 'Unwed mother'은 혼혈아동을 출산한 여성들을 호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미혼모'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며 법률혼에 기초한 결혼 제도 밖에서 출산한 모든 여성들을 의미하며 '미혼모'의 범위는 더 광범위해진다. 즉 생모가 자녀의 생부와 혼인을 했는지 여부가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어머니의 자격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 된 것이다. <177~178쪽> 

1974년 1월 19일 자 '날로 늘어가는 10대 미혼모' 제목의 '동아일보' 보도. [사진=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도서출판 안토니아스]
1974년 1월 19일 자 '날로 늘어가는 10대 미혼모' 제목의 '동아일보' 보도. [사진=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도서출판 안토니아스]

1970년대 아기를 안고 있는 '미혼모'는 자신의 어려움을 상담하고 있는 '어머니'로서의 모습이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면 '미혼모'들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불우한 여성'의 모습만 남아 있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 일부일처제 법률혼에 기초한 가족이 '행복'과 동일시되고, '입양은 아동복지'라는 복지 관행이 고수되며, '성공한 입양인' '행복한 입양 가족' 등에 대한 언설과 이미지가 확산되는 가운데 '미혼모'의 재생산권은 임신과 출산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성도덕'과 '가정윤리' 영역의 문제로 치부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1988년 해외 언론에서 한국의 입양 관행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하자 이를 계기로 처음 우리 사회에 '미혼모 양육권'에 관한 언설이 등장하며 1990년대를 맞이한다. <189쪽> 


『미혼모의 탄생』
권희정 지음 | 안토니아스 펴냄│344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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