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올드보이‧스카우트‧윤희에게’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올드보이‧스카우트‧윤희에게’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2.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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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미장센’(mise-en-scène). 어디서 많이 들어봤지만 정확한 뜻을 말하기엔 조금 망설여지는 단어입니다. 이럴 땐 단어를 하나하나 분리해 그 의미를 파악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mise’(놓기), ‘en’(~에), ‘scène’(장면)입니다. 즉 미장센이란 한국어 의미 그대로 ‘장면에 놓기’가 됩니다.

본래 미장센은 ‘무대 배치’를 뜻하는 프랑스의 연극용어였습니다. 이 용어가 영화로 넘어오면서 ‘장면의 모든 시각적 요소의 배치’라는 뜻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니까 특정 장면에 표현되는 배경, 인물, 조명, 의상, 분장, 카메라의 움직임 등을 감독의 의도대로 배치하고 구성하는 것. 그것을 통칭해 미장센이라고 합니다.

수잔 헤이워드는 책 『영화 사전 : 이론과 비평』에서 “미장센이란 첫째로 세팅, 의상, 조명을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화면 내에서의 움직임을 말한다”라고 설명합니다. 요컨대 비평가들은 감독의 시각적 표현 기법인 미장센을 해독함으로써 그 영화의 주제와 의미를 탐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합니다.

화려한 미장센을 구사하는 감독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박찬욱 감독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이른바 ‘충무로의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릴 만큼 심오하고도 감각적인 미장센을 구사하는 감독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역작 <올드보이>(2003)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영화 <올드보이> 스틸컷

오대수(최민식)가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15년 동안 감금당한 채 군만두를 먹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이 장면을 볼 때 제일 먼저 어떤 것들이 눈에 들어오시나요? 우선 오대수가 입고 있는 붉은 빛의 의상, 기하학 무늬의 벽지, 군만두나 액자 등의 소품들이 시선을 끕니다. 여기서 관객들은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 하필 저런 의상과, 벽지와, 소품일까?’ 비평가들은 바로 이런 미장센을 ‘정신분석학’ ‘기호학’ ‘심리학’ 등을 끌어와 해독함으로써 감독의 작품 세계를 조망합니다.

의상과 벽지에 대해서만 말해볼까요? 영화 속 오대수는 영문도 모른 채 15년간 감금 생활을 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아마 제정신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그는 어떻게든 이곳을 탈출해 자신을 가둔 이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고 싶어 합니다. 빨강이 일반적으로 ‘정열, 흥분, 적극성, 광기’ 등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대수의 심리 상태와 의상 빨강이라는 색깔은 적절히 조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화면의 후경을 장식하는 기하학 무늬의 벽지 역시 오대수의 어지럽고 분열적인 내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미장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2007) 역시 미장센이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영화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광주일고 3학년 야구 천재 선동열을 영입하기 위해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온 야구부 직원 호창(임창정)이 의도치 않게 ‘5‧18민주화운동’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광주에서 호창은 우연히 자신의 옛 연인이었던 세영(엄지원)을 만나게 됩니다. 극 중 호창은 세상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사는 인물로 표상됩니다. 이와 반대로 세영은 세상의 모순을 바로잡고,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 가담하는 행동가이자 투사로 그려집니다.

영화 <스카우트> 스틸컷

감독은 이러한 두 인물의 태도를 단 한 장면으로 모두 표현합니다. 일단 두 인물은 한 공간에 있지만 사이에 있는 벽으로 인해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호창이 있는 좌측 공간은 어둡고, 창문이 닫혀 있습니다. 그 역시 느긋하게 누워있죠. 반대로 세영이 있는 우측은 등이 빛을 비추고, 창문이 열려 있습니다. 누워있는 호창과 달리 그녀는 뭔가를 공부하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호창의 공간에는 없는 태극기 역시 눈에 띕니다.

위 사진은 두 인물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 가치관 등을 미장센으로 훌륭히 형상화한 장면입니다. 어둡고 폐쇄적인 좌측의 공간감과, 밝고 개방적인 우측의 공간감은 강렬한 대비를 이룹니다. 호창과 세영 사이의 벽, 그들의 자세, 그들이 있는 공간의 밝기, 창문의 개폐, 태극기의 유무 등이 바로 이 화면을 장식하는 미장센이자 두 인물의 존재론적 상태를 드러내는 시각적 표현 기법입니다.

영화 <윤희에게> 스틸컷

최근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던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 역시 ‘의상’이라는 미장센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영화입니다. 윤희(김희애)가 입은 의상으로만 말한다면, <윤희에게>는 ‘윤희가 점퍼를 입고 시작해 코트를 입고 끝나는 영화’입니다. 윤희는 남루한 점퍼를 입고 있다가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부터는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코트를 입습니다. 감독은 점퍼와 코트를 ‘단순한 의상‘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적 상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미장센으로 활용합니다.

어떠신가요? 이제 영화를 볼 때 장면 하나하나를 더욱더 유심히 보게 되겠죠? 직접적인 대사가 아닌 ‘공간의 언어’ 미장센. 미장센에 대해 깊이 공부하면 영화를 조금 더 심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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