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간도 식물도 모두 빛을 찾는 존재 『랩 걸』
[리뷰] 인간도 식물도 모두 빛을 찾는 존재 『랩 걸』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12.2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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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과거 ‘녹색동물’이라는 자연다큐멘터리가 흥행한 적 있다. 온통 녹색과 흙색인 이 다큐멘터리는 식물을 ‘동물’이라고 표현하며 식물이 마치 동물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녹색동물’에서 식물들은 빛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식물보다 더 높이 올라가려 경쟁했고, 이익을 위해 위장하거나 곤충들을 속였으며, 땅속에서조차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 식물이 동물이 되고, 한편으론 식물에서 인간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였다. 

때로는 인간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대상에서 인간을, 혹은 인간보다 더 큰 존재를 보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시각을 선사한다. 1969년 과학자의 딸로 태어나 평생 식물을 연구했으며 국제 문제의 이해 증진 및 인도주의를 실천해온 인물에게 수여되는 상인 풀브라이트상을 세 번 받은 유일한 여성 과학자인 이 책의 저자는 일반인이 잘 모르는 식물의 특성과 자신의 삶으로부터 인간과 인간의 삶, 그리고 인간 세상에 대한 통찰을 끌어낸다.  

“씨앗은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안다. 대부분의 씨앗은 자라기 시작하기 전 적어도 1년은 기다린다. 체리 씨앗은 아무 문제 없이 100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각각의 씨앗이 정확히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그 씨앗만이 안다. 씨앗이 성장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 그 기회를 타고 깊은 물 속으로 뛰어들 듯 싹을 틔우려면 그 씨앗이 기다리고 있던 온도와 수분, 빛의 적절한 조합과 다른 많은 조건이 맞아 떨어졌다는 신호가 있어야 한다.”

씨앗의 기다림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중국 토탄 늪에서 2,000년을 기다려온 한 연밥은 인간의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텨내며 결국 연꽃을 피워낸다. 저자의 말처럼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며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 씨앗이다. 

“식물들은 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적을 가지고 있다. 초록색 이파리는 지구상에 사는 거의 모든 생물들이 음식으로 여기는 물질이다. (중략) 그런 악당들 중에서도 곰팡이는 최악이다.”

식물의 가장 큰 적인 곰팡이. 그러나 수백 년에 한 번쯤 어느 황폐하고 혹독한 공간에서 새싹이 움을 틔우고 몇 년씩 부족한 환경을 견딘다면 그곳에는 곰팡이와 식물의 기이한 공생관계가 있다. 물이 너무 적고, 해는 너무 적게 비추고, 바람이 너무 많고, 너무 춥고 등등의 이유로 한 그루의 나무도 자랄 수 없는 곳을 개척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식물의 이파리에서 생성되는 당분의 대부분을 빼앗는 곰팡이다.   

인간도 식물과 마찬가지로 빛을 찾아간다고 말하는 저자는 결과적으로 식물을 통해 인간이 찾을 수 있는 빛에 대해 이야기한다. 식물을 통해 자신과 인간을 보여주는 데서 나아가 인간이 지향할 수 있는 더 높은 삶의 가치를 전하는 것이다.

『랩 걸』
호프 자런 지음·신혜우 그림│김희정 옮김│알마 펴냄│412쪽│1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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