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눈물은 쇄골뼈에 넣어둬』... 김이율 작가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마라”
[인터뷰] 『눈물은 쇄골뼈에 넣어둬』... 김이율 작가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마라”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12.31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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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재우 기자]
[사진=오재우 기자]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행복을 저축하지 마라. 이자도 없고 내일도 없다. 아끼지 마라. 오늘의 꽃, 오늘 실컷 다 봐도 좋다.”

신간 에세이 『눈물은 쇄골뼈에 넣어둬』를 내놓은 ‘감성작가’ 김이율은 여러 챕터 중 ‘오늘의 꽃’을 핵심 메시지로 꼽는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희생하지 말라는 저자의 주장이 언뜻 인생을 즐기자는 ‘욜로’처럼 들리지만, 자세히 보면 그 결이 다르다.

몸이 아픈 아내와 함께한 14년의 결혼생활은 병간호의 연속이었고, 그중 8년은 생업을 내려놓고 병간호만 해야할 정도로 힘겨운 나날을 보낸 저자. 호흡기로 삶을 연명하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아내를 어렵게 떠나보낸 후에야 “마음이 아프지만 홀가분하다”고 말하는 저자의 ‘행복’은 오늘, 자신의 행복에만 집중하는 ‘욜로’와는 분명 다르다.

본명 김현태로 펴낸 아동서가 50여권, 김이율이란 이름으로 펴낸 에세이가 30여권. 누군가는 냇가에 돌 던지듯, 가볍게 출간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에게 출간은 병석의 아내를 돌보고, 또 아들과 삶을 꾸려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이제는 그 아픔을 담담히 꺼내놓을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흘려보낸 저자. “사람들의 눈물이 가슴에 이르지 못하도록 쇄골뼈에 눈물을 모아야 한다”는 그와 자몽에이드를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사진=오재우 기자]
[사진=오재우 기자]

Q. 카피라이터를 하다가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모두 글을 다루는 일인데, 먼저 카피라이터로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대학 졸업하고 백수 생활을 3년 정도 했다. 어느 날은 자장면을 시켜 먹고 그릇을 밖에 내놨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찾아가질 않더라. 파리도 꼬이고 더러운 모습을 이렇게 바라보는데, 문득 그게 내 모습 같은 거다. 순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부재감’이 몰려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걸 소재로 글을 써서 2000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시했는데, 덜컥 당선됐다. 그것 말고도 무가지 등에 6개월 정도 글을 연재했는데, 어느 날 그 글들을 보고 제일기획 인사팀장한테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 왔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 당시 난 정말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제일기획을 그냥 간판 만드는 곳 정도로 생각했다. 카피라이터도 ‘카피’라고 하기에 복사하는 사람으로 알았다. 면접에 가서도 “인상적인 TV CF가 뭔가”라는 질문에 “광고 나오면 채널 돌리는데요”라고 답할 정도로 사회생활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면접관이 어이가 없었던지 “어떻게 이 자리에 오게 됐냐”고 묻기에 신춘문예와 자장면 이야기를 했는데, 어찌어찌해서 합격했고 그렇게 카피라이터 생활을 시작했다.

Q. 글쓰기가 직업으로 이어진 건데,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

A. 고등학교 때부터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지목을 당해 책을 읽게 됐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몇 줄 읽다가 기절했다. 대인공포증이 심했던지라 입안에 침이 고이고 부들부들 떨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순간 정신을 잃었다는 데 스스로가 놀랐고, 큰 상처가 됐다. 이후 성격을 바꿔보려 연극반에도 들어갔는데, 공연을 마치고 나면 그대로고 천성이 바뀌지는 않더라. 그런 가운데 나를 표현하는 수단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글쓰기다.

Q. 지금껏 50여권의 아동도서를 출간했다. 특별히 아동도서를 출간하게 된 이유가 있었는지?

A.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삼성, 대교 눈높이, 오리온 등 동화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제품을 많이 맡았다. 관련된 기획안을 자주 작업하다 보니 아동 도서와 통하는 면이 있었고, 그래서 비교적 쉽게 작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약간 동화적인 면모가 강했던 것 같다. 딱딱한 글보다는 감수성과 상상력이 가미된 책이 좋았다. 동화책은 아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던져줘야 하고 재미도 제공해야 하는데, 아이들과 벌이는 그런 신경전이 게임처럼 재밌게 느껴졌다.

Q. 카피라이터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

A. 아내가 많이 아파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회사를 그만둬야 했고 할 수 있는 건 글을 쓰는 것밖에 없었다. 아내를 알게 된 건 이메일이 막 활성화되던 2000년 무렵, 펜팔을 주고받으면서다. 당시 아내는 지방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서울 큰 병원에 와야 한다고 하기에 내가 살던 반지하 집 방 하나를 며칠 내줬는데, 그걸 계기로 결혼까지 하게 됐다. 아내는 위도 안 좋고, 간도 안 좋고, 여기저기가 복합적으로 안 좋았다. 어른들이 ‘아이를 낳으면 체질이 바뀌어 좋아진다’는 말에 아이를 낳았는데,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산후풍을 추가로 얻었다. 아내는 신경계통이 망가져 늘 춥다고 했기에 한여름에도 보일러를 켜고 이불로 창문을 막아야 했다.

병간호할 사람이 없어 처음에는 윗사람에게 말하고 왔다 갔다 했는데, 애까지 생기고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가니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몸이 아파 예민해진 아내가 ‘일이 중요해? 내가 중요해?’하고 따지고 들면 답이 없더라. 결국, 사표를 내고, 아내와 아이를 보살폈다. 그전에도 동화책을 몇권 내기는 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서는 생활비와 아내 치료비를 벌어야 했기에 본격적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사진=오재우 기자]
[사진=오재우 기자]

Q. 동화작가는 본명인 ‘김현태’, 성인도서는 ‘김이율’로 활동한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책을 펴낸 이유가 있는지?

A. 회사를 그만두고 생활비와 치료비를 벌기 위해 정말 미친 듯이 글을 써야 했다. 아동 책은 물론 성인 책도 냈는데, 아동 도서 작가명으로 성인 도서를 내면 유치하다고 느낄 것 같아 ‘이로운 책을 내보자’하는 뜻에서 ‘김이율’(利律/이로운 책)이란 이름으로 성인책을 내기 시작했다. 또 생활비와 치료비를 벌기 위해 전업 작가의 길로 접어든 만큼 작가로서 어떤 굳은 다짐, 각오 그런 것도 영향이 있었다.

Q. 그런 상황은 좋은(?) ‘글감’이었을 것 같은데, 여태껏 쓴 책에는 그런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A. 아내가 자기 아픈 이야기하는 걸 몹시 싫어했다. 나 역시 굳이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꺼내놓고 싶지 않았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건 2014년 7월, 그해 3월부터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로 연명했다. 중간중간 심정지가 왔고, 심폐소생술로 살린 것만 다섯 번이 넘었다. 심폐소생으로 갈비뼈도 다 부서진 상태에서 몸도 붓고, 얼굴도 이상해지고 다리도 썩어들어갔다. 이미 희망은 없지만, 의사가 계속 연명 의지를 묻는 상황에 고민이 되더라. 내가 신도 아니고 누군가의 생사를 결정한다는 게 기분이 묘했다. 내가 보낸 건지, (스스로) 간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지만, 그 결정이 몹시 괴로웠다.

Q. 그럼 지금은 그 아픔을 꺼내놓을 만큼 회복된 건가?

A.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하더라. 사실 아내를 돌볼 당시에는 힘든지도 몰랐다. 주변에서 “대단하다”하고, 처가에서도 “자네 같은 사람 없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주어진 일을 묵묵히 했던 것뿐이다. 그때는 진짜 내 생활이 아예 없었다. 아내가 상대적 소외감, 박탈감 이런 게 있어서 뭘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인간관계도 끊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글 쓰는 것밖에 없었다. 이건 다작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한데, 간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보내고 나니 홀가분하다. 마음을 정리하는 데 4년이 걸렸고, 이제야 편하게 오픈할 수 있게 됐다.

[사진=오재우 기자]
[사진=오재우 기자]

Q. 『눈물은 쇄골뼈에 넣어둬』란 제목이 뭔가 좀 독특하게 느껴진다. 탄생 일화가 궁금하다.

A. 내가 제안한 제목이다. 사람이 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 눈물이 가슴을 적시지 않도록, 눈물이 마르고 없어지도록 저장 창고에 넣어두라는 개념으로 제목을 지었다. 눈물이 가슴에 닿는 과정에서 이를 막을 수 있는 통로가 뭘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쇄골뼈가 생각났다.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과거 상처에 너무 짓눌리지 말라는 거다. 큰일을 겪고 나니 인생이 되게 심플해졌다. ‘다 필요 없어.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안 해’ 이런 조금 이기적인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이 있는 건데 타인의 행복을 위해 지나치게 자신을 잃어가면서까지 희생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사실 감성 에세이 제목에 ‘쇄골뼈’를 넣고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다.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많았다. 다만 주 독자를 여성으로 정하다 보니 쇄골뼈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쇄골뼈라고 하면 남성보다는 여성적인 느낌이 강하지 않나. 자꾸 ‘쇄골뼈, 쇄골뼈’ 부르다보니 나중에는 사랑스럽더라.

Q. 이번 신작 『눈물은 쇄골뼈에 넣어둬』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자주 나오던데, 혹시 아내를 지칭하는 것인지?

A. 구체적으로 아내와 있었던 사례를 나열하지 않았지만, 그리움의 대상은 대개 아내다. 다만 이번 책은 온전히 내 얘기만을 담았다고 할 수 없다. 글이라는 게 만들어진 대중적 이미지도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Q. 어쩐지 책 삽화에 나온 캐릭터가 작가와 전혀 닮지 않았다. 캐릭터가 훨씬 우락부락하다.

A. 제일기획에 다닐 때 같이 일한 디자이너분께 부탁해서 만든 가상의 캐릭터다.(웃음) 우락부락하지만, 그 속내는 굉장히 감성적인 콘셉트로 만들었다. 디자이너의 약간 깡패스러운 느낌에, 나의 감성적인 부분을 합쳐 만든 캐릭터다.

Q. 책에서 “없는 꿈에 집착하지 말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라고 했다. 꿈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했기에 조심스럽지만, 혹시 살면서 이루고자 하는 어떤 목표가 있는지?

A. 2년 전부터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꿈도 못 꿨던 일이다. 지방에서 대학교 다니던 시절에 연극반을 하긴 했지만, ‘서울 대학로’ 하면 꿈에 무대이지 않나. 얼마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창작산실’에서 개최하는 공모전에 당선돼 배우들과 희곡도 읽고, 내년에는 내가 쓴 대본으로 만든 뮤지컬도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희곡을 읽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공연 보러 다니면서 점점 상처를 잊게 됐다. 일부러 더 거기에 매달렸던 것도 같은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치유된 것 같다. 앞으로 꾸준히 책을 내고, 연극무대에 내 작품이 오르도록 희곡도 쓸 예정이다. 또 영화 시나리오나 드라마 대본을 쓸 기회도 생겼으면 좋겠다.

Q. 개인적으로 아픔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됐던 책을 추천한다면.

A. 아내를 보내고 나서 쓴 책 중에 『가끔은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가 있다』가 있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내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누군가에는 더 눈물이 나게 하는 책일 수 있지만, 울고 나면 ‘정화’가 되고 카타르시스도 느끼게 되지 않나. 힘들고 쓸쓸하고, 진짜 울고 싶을 때 실컷 쏟아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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