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빨강 신호등 앞에 멈춰선 저는 가게의 유리창에 살짝 다가가서 제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못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2년 전보다 아주 조금 여드름이 없어지긴 했지만 그런 건 작은 위안일 뿐, 근본적으로 나는 역시 못생겼구나 하고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냥 추녀가 아닙니다.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추녀입니다.<24쪽>
내가 되고 싶은 여자는 예쁘고, 머리 좋고, 멋지고, 재미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 있고, 다른 사람에게 알랑거리지 않고, 나중에 자기혐오에 빠질 만한 촌스러운 리액션도 하지 않는 사람. 그런 여자가 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까?<95쪽>
도쿄에는 이런 사람이 많다. 일본이 계급사회가 아니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베드타운 출신의 게이코는 상상도 못 할 상류층이 우글거리고, 그 사람들은 몇 세대에 걸쳐서 축적된 경제력과 문화 자본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신감을 넘쳐날 만큼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묘하게도 어깨에 힘을 빼고 겸손한 태도로 살아간다. 잘난 체하는 사람은 모두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다. 게이코는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 묻혀서 결국 이번에도 자기가 어디 출신인지 말할 기회를 날려버렸다.<106쪽>
고마쓰 양은 단 한 번도 숙제를 빠뜨리거나 지각하지 않았다. 고마쓰 양은 성적이 내려가면 엄청나게 풀이 죽었고, 교무실에 불려 가기라도 하면 언제나 잔뜩 긴장했다. 그러나 아무리 지적받아도 담갈색 머리와 피어싱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타고난 호전적인 얼굴 때문인지는 몰라도, 고마쓰양은 아무리 착실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어도 오히려 뻔뻔스럽다고 더 많은 꾸중을 들어야 했다.<215쪽>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던 게, 그리고 할 줄 아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게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예쁘고 약간 멍청한 여자가 더 잘 산다’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 진실일지도 몰라. 가가미의 딸에게 흘끗 눈길을 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완전히 늦어버리기 직전에 삶의 궤도를 수정했더라면 지금의 가가미와 똑같은 모습이었겠지. 주체성이 너무 강한 복잡한 인간이 되지 않아도 되는-그 덕분에 고향 생활에 순순히 적응하고 있는-또 다른 나의 모습.<265쪽>
『외로워지면 내 이름을 불러줘』
야마우치 마리코 지음│박은희 옮김│허클베리북스 펴냄│296쪽│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