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하루만큼의 여행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하루만큼의 여행 
  • 스미레
  • 승인 2019.12.23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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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재미있는 게 정말 많아.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어.”

며칠 전 잠에 빠져들며 아이가 한 말이다. 어쩐지 귀에 익어 핸드폰 메모장을 뒤져보니 올여름 유럽 여행지에서 아이가 했던 것과 꼭 같은 말이었다.

유럽에서 그 말을 듣곤 마음이 울렁였다. 새로운 풍경이 아이를 즐겁게 해줬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앞으론 이런 경험을 많이 만들어주자는 반성과 다짐을 버무려 핸드폰에 입력을 해 둔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그날은 그저 평범한 화요일이었다. 오늘 뭐 했지, 떠올려봐도 특별한 게 없었다. 대체 무엇이 아이에게 빛을 던져준 건진 모르겠지만 아이에겐 보통 날도 여행과 같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부러운 마음도 조금.

지금 내가 하는 일, 그러니까 육아만큼 여행과 먼 말이 또 있을까.

‘일상을 여행한다’는 말이 식상해지도록 ‘육아를 여행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 알프스를 여행한다 할 순 있어도 에베레스트를 여행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

이유는 그뿐이 아니다. 여행에 대한 기억을 되감아보면 나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였다. 가족, 친구, 연인. 그 배경이 어디건 나 외의 동행이 하나 또는 여럿이었다.

하지만 육아하는 나는 거의 늘 혼자였다. 아가 시절의 아이는 동행자라기보단 짐에 가까웠으니.

그럼에도 육아는 여행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지도나 일정표를 들고 있어도 가다보면 일정은 어그러지기 일쑤였고, 많은 짐은 불편하니 홀홀해져야 했다.

아이와의 하루는 다사다난해서 평온한 저녁 풍경으로 매끄럽게 안착하면 그날 여행은 성공이었다. 아이가 잠들면 여행의 끝,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고 안전 밸트 사인이 꺼질 때 느껴지던 감사와 안도가 들었다. 그때 나는 홀로 큰 짐을 지고 하루만큼의 긴 여행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집은 나의 완벽한 요새가 돼야 했다. 보행기니 젖병 소독기니 하는 아이 용품이 자리를 뺄 무렵, 나를 위한 장비들을 들이기 시작했다. 최신 커피머신, 성능 좋은 스피커, 부지런한 빵 반죽기 같은 것들이 속속 자리를 메워갔다.

그런데 그런 것들의 쓸모는 잠시일 뿐. 긴 하루를 사는 내겐 그 이상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무엇도 하지 않지만 나를 달래주는.

‘조용한 위안’이란 그 역할에 가장 충실했던 건 낡고 정스런 물건들이었다. 할머니와 엄마가 쓰시던 가구와 식기, 아이의 그림과 나의 노트들...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어주던 것들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육아 공간은 완벽한 요새가 아닌 안락한 다락방이 되어갔다. 편리함과 편안함은 같은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가진 게 많았다.

햇빛, 아이의 웃음, 주전자 위의 김, 기도, 아름다운 사진, 읽고 싶은 책, 시원한 보리차.

좋아하는 일은 자주 못 하더라도 좋아하는 평범한 것들에 둘러싸여 지내는 것. 그건 ‘어찌할 도리 없는’ 환경에서 찾아낸 나름의 묘책이었다. 지칠 때면 그런 것들을 보고 만졌다.

그런 소소한 즐거움을 자주 겪으며 나도 모르게 ‘좋다’ 중얼 대는 순간이 늘고 버럭은 줄었다. 하루는 여전히 길고 변한 건 무엇도 없었다. 그런데 어깨를 파고들던 짐의 무게가 조금 줄어있었다. 

아이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거기에 있어줌으로써 나를 풍요케 하는 것. 그 가치를 알고는 아이의 마음도 존중했다. 아이가 자기 애착 물건이 사라져 슬퍼하면 나도 같이 아팠다.

그러다 보니 처분이 더뎌졌고, 아이 몫의 잡동사니와 일상용품, 책이 벽장 가득 많아졌다.

겨울날 우리집에 온 손님들을 아연케 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밖은 영하인데 우리 거실엔 선풍기가 몇 대씩 나와 있는 것. 삼복 더위에 히터가 나와 있는 날도 많다. 아이가 낑낑대며 창고에서 꺼내온 것들이다. 별 스런 이유도 없다. 단지, 보고 싶었단다.

나는 아이의 이 ‘철없는’ 행동을 이해한다. 조금 견딜 뿐 치우지 않는다.

그것을 바라보는 아이 얼굴이 순하게 맑았기 때문에. 

육아에서 완벽히 놓여나 본 적도, 집을 한 발짝 떠나 본 적도 없는 내가 육아를 ‘여행하는’ 느낌이 들었던 건 왜일까.

여행지를 여행하는 사람엔 두 부류가 있다고 한다. 능동적인 여행자와 수동적인 관광객.

육아라는 낯선 땅에서 나는‘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볼거리가 없는 곳에서도 볼거리를 찾아내고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었다. 정해진 구경거리를 둘러보는 수동적 관광객은 되지 않는 것, 단순히 즐겁기만 한 관광으로서의 여행은 사양하는 것.

고생 좀 하더라도 독창적이고 능동적인‘여행자’가 되어보는 것, 적어도 그러려고 애를 쓰는 것. 나에겐 그것이 용기를 키우는 일이었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의 벗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여럿이 다닐 때는 쉽게 놓치던 자기 마음을 비로소 챙기게 된다. 일깨워주는 이가 사라지고서야 자신을 솔직하게 돌아보게 된다.

낯선 풍경 안에서 홀로 자기 속을 들여다보는 것만큼 서럽고 축축한 일도 없었다. 남들 눈엔 느리고 소심한 엄마일지라도 스스로의 육아가 용감 했다 생각 하는 건, 이 때문일 테다.

때론 정말 떠나고픈 마음에도 손을 내밀어 본다. 유모차 대신 여행 가방을 끌고 당당히 혼행길에 오르는 엄마들을 조용히 응원했다. ‘나라면...?’하는 상상만으로도 힘이 났다.

언젠가 ‘삶의 리셋’을 위해 여행한다는 어느 작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삶을 리셋 시키는 것이 여행이라면, 그런 여행은 육아에 몸이 묶인 삶에서도 실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말하자면 아주 잠깐의 리셋, 초단기 여행인 것이다.

일이 잘되지 않을 때 탄산수를 들이켜거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하면 몸도 마음도 리셋 되던 기억을 떠올렸다.

틈틈히 내게 좋은 것을 알아가고, 그것들과 눈을 맞추고. 그렇게 숨을 돌리면 육아에 지친 삶이 조금은 쾌청해졌다. 마음의 전환, 방향의 환기. 멀리 떠나야만 여행은 아니니까.

당신은 지금 하루의 어디쯤을 여행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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