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델마와 루이스‧소공녀‧길’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델마와 루이스‧소공녀‧길’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2.22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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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인간의 진짜 주소는 집이 아니라 길이다. 인생은 그 자체가 여행이다”라고 했던 영국의 소설가 브루스 채트윈의 말을 아시나요? 채트윈의 말처럼 어쩌면 인간은 영원히 길 위에서 떠도는, 방랑자의 운명을 안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영화가 있습니다. 길 위에서 머뭇거리는 영화. 정확하게 얘기하면, 길 위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인간을 담은 영화이겠지요. 머뭇거리는 인간과 그를 아프게 지탱하고 있는 길의 아름다운 동행. 그런 영화를 우리는 ‘로드 무비’(road movie)라고 부릅니다.

수잔 헤이워드의 책 『영화사전 : 이론과 비평』에 따르면, 로드 무비는 말 그대로 주인공들이 길 위에서 움직이는 영화입니다. 특히 그는 “로드 무비는 일종의 개척자 정신에 관한 것으로, 이것의 주요한 약호 가운데 하나는 발견, 대개 자기 발견이다”라고 말합니다.

영화 <길> 스틸컷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La Strada, 1954)은 전후 이탈리아 민중의 고단한 삶과 애환을 조명한 작품입니다. 영화의 여러 가지 설정(딸을 매매하는 엄마, 유랑, 광대 등)은 빈곤과 실업, 패전 등으로 점철된 당시 이탈리아의 비참한 현실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광대 짓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잠파노와 엄마로부터 1만 리라(한화 약 200만원)에 팔려 잠파노의 조수가 된 젤소미나는 당시 이탈리아의 참혹한 시대상과 조응하는, 하나의 비극적 원형으로 내러티브 안에서 기능합니다.

두 사람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들의 존재와도 같은 삼륜차를 타고 황량한 길 위를 떠돕니다. 영화의 마지막, 잠파노는 젤소미나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길 위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 셈이죠.

영화 <델마와 루이스> 스틸컷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1991)는 두 여성의 일탈과 연대를 담은 흥미진진한 로드 무비입니다.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에 지친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그녀의 절친한 친구 루이스(수잔 서랜든)는 즉흥적으로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 중 어느 마을 술집에서 델마는 한 남성으로부터 강간당할 위기에 처하고, 이를 본 루이스가 그 남성을 총으로 쏴 죽입니다. 이때부터 그들의 여정은 여행이 아닌 험난한 도주로 바뀝니다. 특히 엔딩 시퀀스에서 델마와 루이스의 도주 장면을 ‘익스트림 롱 숏’(아주 멀리찍기)의 ‘프리즈 프레임’(freeze frame, 정지 화면)으로 포착한 장면은 그야말로 강렬한 로드 무비의 정수를 뿜어냅니다.

영화 <소공녀> 스틸컷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2017)는 한국의 청년들이 처한 고단한 현실을 그린 한국형 로드 무비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미소는 자신이 좋아하는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할 수 없어 월세방을 처분하고 친구들의 집을 전전합니다.

<소공녀>는 보통의 로드 무비와는 그 결이 조금 다릅니다. 대개의 로드 무비가 주인공의 지난한 여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교훈적 메시지를 담아낸다면, 이 영화는 길 위를 방랑하는 주인공이 아닌 그 주변 인물들이 모종의 깨달음을 얻는 역방향의 로드 무비입니다.

<소공녀>의 미소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자기가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를 명확하게 아는 인간입니다. 영화가 시작한 후에는 다만 그러한 가치들을 실천해나갈 뿐이죠. 이에 반해 미소가 거쳐 가는 친구들은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인간들을 표상합니다. 그러니까 미소의 여정은 미소가 아닌 그녀의 친구들(혹은 관객들)을 변화시키는 로드 무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스틸컷

이 외에도 아서 펜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 1967), 조지 로이 힐 감독의 <내일을 향해 쏴라>(1969), 월터 머치 감독의 <오즈의 마법사>(1985) 등이 고전 로드 무비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국 영화로는 이만희 감독의 <삼포 가는 길>(1975),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 김인식 감독의 <로드 무비>(2002)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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