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나는 히틀러의 시식가가 되었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책 속 명문장] 나는 히틀러의 시식가가 되었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 전진호 기자
  • 승인 2019.12.20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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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내 몸은 총통의 음식을 흡수했다. 이제 총통의 음식은 피를 타고 내 몸속에서 순환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무사했고 나는 또다시 배가 고팠다.<21쪽>

두려움은 하루 세 번 노크도 없이 들어와 내 곁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두려움도 따라 일어났다. 이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친구처럼 익숙했다.<106~107쪽>

사실 모든 삶은 강박증의 일환이다. 언제든 부딪혀 추락할 수 있다.<110쪽>

나는 그리움의 대상이 없는 향수병을 앓았다. 그레고어에 대한 그리움만은 아니었다. 나는 삶이 그리웠다.<132쪽>

고통이 너무나 큰 나머지 그 이유마저 잠식되고 있었다. 고통은 내 인격의 일부분이 되었다.<156쪽>

비밀을 공유하면 가까워지기보다는 멀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여러 사람이 죄를 저지를 때는 눈 딱 감고 해치워야 한다. 어차피 죄책감은 빨리 사라질 테니 말이다. 집단적 죄책감은 형태가 모호하지만 수치심은 개인적인 감정이다.<190쪽>

12년 동안이나 독재 체제하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인간은 무엇 때문에 독재에 순응하는가?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 우리의 변명이다. 나는 고작해야 내가 씹어 삼키는 음식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을 뿐이다. 음식을 먹는 무해한 행위 말이다. 그것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겠는가. 다른 여자들은 한 달에 200마르크를 받고 몸을 파는 것을 수치스러워할까? 높은 급여를 받으며 호식을 하는 이 직업을 부끄럽게 생각할까? 그들도 나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에 자기 생명을 희생하는 것을 비윤리적 행위라고 생각할까? 나는 지금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기가 부끄러웠다. 내게 아버지는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재판관이었다. 히틀러에 대해서는 대안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치글러는 그렇지 않았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도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나는 그런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인 거다.<197쪽>

크라우젠도르프는 그렇게 점심과 저녁을 먹는 식당이자 기숙사가 되었다. 우리들의 감옥이 되었다. 우리는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만 집에서 잘 수 있었다. 나머지 시간은 오직 총통을 위해 바쳤다. 그는 같은 가격으로 우리의 삶을 통째로 사들였고 우리에게 협상의 여지는 없었다. 우리는 병영에 격리되었다. 우리는 무기 없는 군인이자 신분 높은 노예였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었고 실제로 라스텐부르크 밖에서는 아무도 우리의 존재를 몰랐다.<301쪽>

친구란 그렇게 되는 것이다. 세상과 격리된 상태에서 말이다.<372쪽>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패트릭 네스 지음│로비나 카이 그림│김지연 옮김│지학사아르볼 펴냄│176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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