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교육은 유아기부터… 그림책이 평등을 담는 방법
성평등 교육은 유아기부터… 그림책이 평등을 담는 방법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12.2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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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성평등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최근 몇 년간 성평등을 다루는 영유아 그림책이 다수 출간되고 있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성평등 도서 큐레이션 서비스 ‘우따따’에 따르면 성평등 도서는 ▲왕자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공주가 아닌 주체적이고 꿈을 향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공주가 등장하는 그림책 ▲성별에 씌워지는 성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뜨리고 이에 맞서는 주인공을 만날 수 있는 그림책 ▲여성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 문제를 해결하는 그림책 ▲기존 위인 전집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여성 위인을 다룬 그림책 등이다.          

근래 출간된 그림책들이 성평등을 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가령 진수경 작가의 『산타 할머니』는 제목에서부터 ‘산타’라고 하면 무조건 ‘할아버지’가 튀어나오는 고정관념을 반성케 한다. 어쩌면 우리는 어릴 적부터 줄곧 ‘산타 할아버지’라는 말을 듣고 자라 크리스마스 밤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대사(大事)는 남성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산타 할머니』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책의 주인공인 할머니는 ‘산타는 남자들만 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실망하지만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산타 시험에 도전해 당당히 합격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남성 산타들이 하던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해낼 뿐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는 남성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예컨대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밤 갑자기 우는 아이를 과거 아이 셋과 손주 일곱을 키웠던 경험으로 능숙하게 재운다. 그림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크리스마스 아침 산타 할머니가 자는 동안 산타 옷을 빨아 놓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이는 할머니의 남편이다.

오소리 작가의 『노를 든 신부』는 근래 출간된 성평등 그림책 중에서 가장 상징적이며 동시에 전위적이다. 친구들이 모두 시집가버린 외딴 섬에서 심심해진 소녀는 “나도 신부가 되어야겠어!”라며 웨딩드레스를 입고 모험을 떠난다. 신랑의 턱시도와 달리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남성과의 결혼이 전제돼야 입을 수 있는 옷이지만, 당차게도 소녀는 웨딩드레스를 입는 데 사회적인 동의를 구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소녀가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줄곧 소녀를 ‘소녀’가 아닌 ‘신부’라고 서술하는데, 이 역시 여성이 무언가가 되는 데 누군가의 동의나 허락이 필요치 않다는 상징이다.   

이후 신부는 집을 나설 때 부모님에게서 노를 하나 받고, 노가 생긴 김에 바다로 나가려 한다. 그러나 소녀의 전 재산이 노 하나뿐인 것을 본 남성들은 배를 태워주지 않고, 소녀는 매달리거나 낙심하지 않는다. 반대로 수많은 여성을 자신의 배에 태운 한 남성은 “내 배에 타시지요. 절대 외롭지 않을 거요”라며, 또한 바다가 아닌 산꼭대기에 놓인 호화로운 배를 가진 남성은 “이 배를 타면 모두가 부러워할 거요”라며 소녀에게 탑승을 권하지만 소녀는 거절한다. 결국 소녀는 남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대신 노를 이용해 과일을 따고, 요리를 하고, 곰과 격투를 하고, 결국 세계적인 야구선수가 된다. 이 모든 장면이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일으키는 여성에 대한 상징이다.

일반적으로 성평등 그림책은 여성이 중심이지만 그렇지 않은 책도 있다. 이은지 작가의 『코숭이 무술』은 남성과 여성의 마음을 동시에 고려한다. 마을에 수상한 괴물 발자국이 찍히고, 코숭이 남매는 마을의 코숭이들에게 할아버지가 만든 무술책을 바탕으로 괴물에 대항할 수 있는 무술을 가르친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남녀가 사용하는 기술을 각기 다르게 적어놨으나 실제로 남매가 무술을 가르쳐보니 남성의 기술을 여성이 더 잘하거나, 그 반대이거나, 여성과 남성의 실력이 비슷한 기술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남녀가 다를 게 없음을 깨달은 코숭이들은 각자 잘할 수 있는 기술들을 연마해 괴물을 물리친다. 저자는 『코숭이 무술』을 펴낸 출판사 ‘후즈갓마이테일’과의 인터뷰에서 “‘남자는 강해야 한다’라는 게 감성적이고 섬세한 남자아이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가오는지 상상할 수도 없고요. 남자에게는 섬세함을, 여자에게는 강함을 일부러 강요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제 안에 오랜 시간 축적돼 있는 무수한 편견을 걷어낸 채로,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해’가 없는, 어떤 시각으로 봐도 편견이 없는 책을 만드는 게 일차적인 목표가 됐어요”라고 설명했다. 성평등을 담는 책의 출간이 늘고 있다는 사실도 즐겁지만, 이 책들이 성평등을 담아내는 다양한 방식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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