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영화로 보는 성(性)의 현대사 『야한 영화의 정치학』
[포토인북] 영화로 보는 성(性)의 현대사 『야한 영화의 정치학』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12.29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이 책은 1910년대부터 2010년대 이후까지 영화사에서 에로티시즘이 어떻게 재현돼 왔는가를 다룬다. 당대의 지배 담론과의 충돌 혹은 대항으로 잉태된 문화적 산물인 일명 '야한 영화'를 소개하며 때로는 저항과 혁명의 기제로, 자유의 암시로, 삶과 죽음의 은유로 사용된 영화 속 섹스의 의미를 톺아본다. 성 현대사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을만한 지표적 영화 소개와 설명이 인상적인 책이다.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주연 여배우 헤디 라마는 생의 마지막까지 '오르가즘 배우'라는 멍에를 벗어내지 못했다. [사진=도서출판 카모바일북스]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주연 여배우 헤디 라마는 생의 마지막까지 '오르가즘 배우'라는 멍에를 벗어내지 못했다. [사진=IMDB  United Artists/도서출판 카모바일북스] 

체코 출신의 구스타브 마카티 감독의 <엑스터시>는 극영화 최초로 여성의 누드와 오르가즘을 재현한 작품이다. 노출의 수위와 선정성으로 바티칸 신문에서는 "교황이 영화를 금지하도록 권장했다"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노출과 오르가즘 장면 등이 수정, 삭제돼 제작 후 6년 뒤인 1940년에 개봉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초기 영화가 그려내는 섹슈얼리티에 열광했다. <엑스터시>는 유럽 전역에서 관객들을 끌어모으며 결국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주연 여배우 헤디 라마를 헐리우드에 입성시키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작품이다. (중략) 섹스영화로만 치부되기엔 아까운 작품이지만 여주인공 헤디 라마에게는 낙인에 가까운 존재였던 것은 사실이다. 1940년대 헐리우드를 지배했던 헤디 라마가 <엑스터시>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 본격적으로 메이저 영화들로 활약을 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엑스터시>의 '오르가즘 배우'라는 멍에를 벗어나지 못했다. <39~33쪽> 

하워드 혹스 감독의 영화 '무법자' [사진=IMDB, United Artists/도서출판 카모바일북스]
하워드 혹스 감독의 영화 '무법자' [사진=IMDB, United Artists/도서출판 카모바일북스]

오로지 제인 러셀을 위한, 혹은 그의 아름답고 풍만한 가슴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웨스턴 <무법자>는 평소에 러셀을 짝사랑했던 하워드 휴즈 감독이 그에게 바치는 연가 같은 것이었다. 러실에 등장하는 장면마다 슬로우 모션과 하아라이팅이 쓰이는 등의 다소 과한 기법이 총동원 됐던 것은 모두 제인 러셀의 완벽한 가슴을 부각시키고 싶은 혹스의 욕망이었다. (중략) <무법자>는 1941년에 완성됐지만 헐리우드제작코드협회에서 러셀의 가슴이 너무 크고 두드러진다는 이유로 상영승인을 거부했다. 휴즈는 러셀의 가슴 장면을 몇 컷 편집했지만 20세기폭스는 끝내 배급을 거부했다. 휴즈는 검열과의 갈등을 마케팅으로 이용하기로 한다. 그는 곧 엄청나게 음란한 영화를 개봉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고 마침내 1946년 영화가 개봉했을 때 구름뗴 같은 관객이 몰려들었다. <36~38쪽>

김수용 감독의 영화 '가시를  삼킨장미' [사진=KMDB/도서출판 카모바일북스]
김수용 감독의 영화 '가시를 삼킨장미' [사진=KMDB/도서출판 카모바일북스]

<가시를 삼킨 장미>가 제작된 19970년대 말은 박정희 정권 하에 이뤄졌던 영화법 제4차 개정(1973)이 이뤄지고 난 이후이고 앞서 집행되던 악명 높은 이중검열과 엄격했던 실사검열이 유지돼 오던 시기이다. 박유희의 연구에 의하면 박정희 정권의 영화검열 기준 중 하나는 근대화의 친화적인 재현이었으며, 특히 빈곤이나 하층민의 생활상을 중점적으로 단속했다고 서술돼 있다. 다시 말해 <가시를 삼킨 장미>에서 시도 떄도 없이 등장하는 아파트 장면 혹은 그녀가 부산에서 신성일과 데이트를 하면서 간간히 비춰졌던 부산대교(1976년 시공) 및 대형 아파트 단지들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성 이슈들(간통, 여대생의 매춘 행위, 여성의 성적 욕망)을 덮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93~94쪽> 

영화 '어둠의자식들' [사진=KMDB/도서출판 카모바일북스]
영화 '어둠의자식들' [사진=KMDB/도서출판 카모바일북스]

(1980년대) 호스티스 영화 류, 즉 술집 작부나 창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은 높아진 수위의 성 재현과 나름의 사회적 고발이라는 표제를 달고 극장가를 누볐다. 에로티시즘으로 중무장한 사회고발물이라는 기형적인 사이클이 태동한 것이다. 이장호 연출의 <어둠의 자식들>(1981)은 이 기묘한 조합을 반영하는 대표작이다. (중략) 다만 이 영화가 1980년대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영화 중 한 편으로 언급되는 것에는 불편함이 느껴진다. 주인공인 '영애'는 1980년대를 반영하는 현실적인 인물이라기보다 선대를 지배했던 호스티스 영화들에서 완벽히 구축됐던 여성의 희생 서사를 성실하게 재현하는 신화적인 인물에 가깝기 때문이다. <125~127쪽> 


『야한 영화의 정치학』
김효정 지음 | 카모마일북스 펴냄│248쪽│22,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