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들이 담겼다. 그 풍광 속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는 단연 ‘사람’이다. 제주가 선사한 고요함과 아늑함으로 위로를 받았다는 저자. 저자가 써내려간 위로의 글에 담긴 따뜻한 온도는 독자들의 마음으로 재빠르게 전이된다. 제주의 자연과 사람과 삶에 대한 작가의 은밀한 안테나가 담긴 책. 곳곳에 ‘제주어’를 감각적으로 사용한 저자의 문체가 독서의 흥미를 더한다. 저자를 따라 제주를 여행하자.
사진이 없었더라면
내가 밟은 세상의 넓이를 어찌 알았을까
사십이 년 십 개월간 눌리어온
딱딱하게 쪼그라든 내 껍데기 주름이 만든 길을
등허리에 패인 땀얼룩 살비듬의 지도를
버리지 못한 그러나 결국 자기에게 보여야만 할 뒷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차마 웃을 수 있었을까
네가 없었더라면
<20쪽>
돌아가야 할 계절이 있다
그 골목엔 여름에 눈이 내리고
아침녘 아이들의 웃음소리
비가 오면 별이 내렸지
<59쪽>
하늘도 바다도 젖지 않는데
숨겨둔 마음이 잘도 젖는다
멀어지면 나타나고 어두워야 보이는
불어터진 심장도 늘 그렇다.
<142쪽>
기다리는 버스는 안 오고 애먼데만 눈이 간다
다들 어디론가 돌아가는 중이다
경운기에 용달 짐칸에
15인승 미니버스에 강오 방석 낭푼 마호병 사이에 몸을 싣고
맥심커피 봉지만한 위안으로 하루치를 써낸
허리 어깨 무릎 손 발을 싣고
밭일에서 돌아오는 아주망 할망들의 걸음이 재다
밭이 모두 비도록 버스는 오지 않았고
어둠보다 먼저 내린 비에 쫓겨 떠났다
기다린다고 다 오는 건 아니었다
<239쪽>
『괜찮지만 괜찮습니다』
시린 지음│대숲바람 펴냄│304쪽│14,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