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XX” 세분화되는 2020 출판계 트렌드?
“아무튼, XX” 세분화되는 2020 출판계 트렌드?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12.1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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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내년 소비 트렌드를 전망한 김난도 교수 외 8인의 책 『트렌드 코리아 2020』은 2020년 소비 트렌드를 이끌 세 축(세분화, 양면성, 성장) 중 ‘세분화’에 가장 무게를 두고 설명한다. 시장을 나누는 세분화(segmentation)는 본래 마케팅의 기본이지만, 이제는 이 세분화의 정도가 시장을 넘어 고객 개개인, 그리고 그 이상으로 극도로 잘게 나뉜다는 것이다. 내년 시장에서는 고객의 다양한 선호와 취향에 맞는 ‘특화’가 생존의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출판 시장에서도 이러한 세분화가 벌써 감지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출판사 위고·제철소·코난북스에서 출간하고 있는 ‘아무튼’ 시리즈다. 『아무튼, 술』 『아무튼, 양말』 『아무튼, 예능』 『아무튼, 비건』 『아무튼, 문구』 등 세 곳의 출판사에서 17일 기준 총 25종이 출간된 이 시리즈는 어떤 한 사람의 세분화된 애호(愛好)의 역사가 압축적으로 표현된 150쪽 내외의 에세이다. 일반적인 에세이가 한 개인의 총체적인 인생을 다루는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세분화된 콘텐츠다.    

그런데 그 세분화의 방식이 독특하다. 제목만 보면 술이나 양말, 예능, 비건, 문구 등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는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그런 정보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대신 ‘아무튼’ 시리즈는 어떤 대상과 관련된 추억들을 섬세하게 기록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좋아하면 그 대상에 대한 정보가 생각나기보다는 그 대상과 함께한 추억들이 먼저 떠오르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쓴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은 읽다 보면 마치 친한 친구와 술에 취하기라도 한 듯이 정신없이 웃게 된다. 수능 백일을 앞두고 마신 인생 첫 술에 만취해 “나는 배추야”라고 주사를 부렸던 저자. 이날 저자는 친한 친구와 함께 자신이 정말 배추인지에 대해 토론하다가 대판 싸운다. 이 외에도 소주병을 따고 첫 잔을 따를 때 나는 똘똘똘똘과 꼴꼴꼴꼴 사이 어디쯤 있는 청아한 소리를 좋아해 소주를 주문할 때 늘 두 병을 시켜 한 병을 채워가며 먹는다는 이야기, 취하면 편의점에 가서 붓펜 같은 쓸데없는 물건을 사온다는 기본적인 주사 이야기부터 20년 동안 단 네 번 있었던 엄청난 주사 이야기 등 술꾼의 유쾌한 주사(酒史)가 펼쳐진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뭐든지 그 무언가를 투과해서 보이기 마련이다. 돈은 많지 않지만, 돈이 생기면 옷보다는 양말을 산다는 저자 구달은 『아무튼, 양말』에서 그의 인생의 많은 것을 양말과 연결한다. 예컨대 그가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카뮈의 어머니가 카뮈에게 결혼 선물로 무엇이 받고 싶으냐고 묻자 카뮈가 “흰 양말 한 다스”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그는 단벌 신사였던 카뮈가 패션으로 칭송받았던 이유가 양말 때문이었다는 자신만의 결론을 내기에 이른다. 또한 『해리 포터』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말포이 가문의 집요정 도비가 주인에게 양말을 받고 해방된 심정을 이해하기까지 이른다. 이 말도 안 되는 연결들은 저자가 “양말이 88켤레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쓴 것처럼 논리적이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난 애호가 느껴진다.    

“웃으라고 만든 방송을 보면서 왜 울고 싶고, 외면하고 싶어졌을까.” 복길(트위터 계정 이름) 작가의 『아무튼, 예능』은 TV를 너무 사랑해 TV를 빼놓고는 인생을 논할 수 없을 정도인 저자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말하고 또 사회를 비평하는 이야기다. 『아무튼, 술』이나 『아무튼, 양말』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가령 스타들이 대신 발품을 팔아서 살 집을 구해주는 프로그램인 MBC ‘구해줘 홈즈’는 저자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미쳐버렸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 부동산 가격과 도무지 어떻게 살라는 건지 알 수 없는 기이한 방에 대한 고발 르포”다. 프로그램에서 살만한 집을 구하러 떠나는 스타의 험난한(?) 여정이 이사를 거듭할수록 집 안의 가구가 하나씩 사라졌으며 지금은 극도로 미니멀한 방에서 살고 있는 저자의 삶과 겹쳤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우리가 낄낄 웃기만 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외려 상처받은 마음을 드러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TV를 사랑하기에 “무시하거나 포기하는 대신, 죽기 직전까지 한국 방송의 가장 열렬한 시청자가 될 것”이라고 다짐한다.

『아무튼, 비건』 『아무튼, 문구』 『아무튼, 요가』 『아무튼, 발레』 『아무튼, 기타』 『아무튼, 식물』 『아무튼, 방콕』 『아무튼, 스릴러』 『아무튼, 서재』 『아무튼, 로드무비』 『아무튼, 외국어』 …. 어떤 대상을 너무나 사랑해 자기 자신을 일정 부분 내어준 이들의 세분화된 애호가 내년 트렌드를 타고 더욱 부흥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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