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지금-이곳’에 대한 뜨거운 성찰 『엔드 바 텐드』
[책 속 명문장] ‘지금-이곳’에 대한 뜨거운 성찰 『엔드 바 텐드』
  • 전진호 기자
  • 승인 2019.12.13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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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사람들이 떨어지는 이유는 간단해요.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남을 봐서 그래요. 남들을 기준으로 삼는 거죠. 남들에게 박수 받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 영원히 성공할 수 없어요. 영원히 불행해요. 남들이 만든 기준은 매번 바뀌잖아요.<57쪽>

시계 수리 기술자의 시간에는 무엇보다 진정성의 맥박이 뛰고 있었다. (중략) 나는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며 이렇게 가게 안에 수많은 시곗바늘이 돌아가고 추가 흔들리면 어지럽거나 불안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악수를 하던 그가 일축했다. “건 모르는 소리여. 우덜은 저거시 안 움직이면 불안혀.”<91~92쪽>

완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토대가 되는 팔꿈치, 전완, 손 바깥으로 중력을 배분시켜야 하지만 실력이 그렇게 완벽하지 못했다. 완은 이대로 목이 부러지고 머리가 터져도 상관없다고 여겼다. (중략) 요즘처럼 자신이 고통을 담기에 적당한 그릇이라는 사실을 절감한 적이 없었다. 고통스러울수록 슬픔의 면적이 줄어든다는 것은 다행이었다.<111~112쪽>

강 대표는 자주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은 자신이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고래가 되어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는 식의 공상적이고 황당한 꿈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흔히 보는 트럭에 소금을 가득 싣고 시골길을 달려서 자신이 그것을 가가호호 한 됫박씩 나눠주는 꿈이었다. 학교 혹은 유치원, 급식소에 원하는 만큼 퍼주는 일이었다.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147쪽>

한참을 걸으니 그네가 보였다. 한 쌍의 은목걸이처럼 걸린 그네에는 붉은색과 파란색 안장이 달려 있었다. 그네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모래톱에 돋아났다. 유독 세희의 것은 길쭉하고 새카맣고 그윽한 향기가 풍겼다. 두 그림자는 공중으로 치솟을 때마다 모래바닥에서 서로 겹쳐졌다 나눠지고 포개졌다 떨어졌다.<200쪽>

위태위태하게 흔들리며 떠가던 종이배가 어느 순간 이끼 낀 바위에 걸려 빙글빙글 맴을 돌았다. 병일은 개울가로 조심히 내려와 팔을 뻗어 그 맴도는 배의 길을 풀어주었다. 순간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애잔하게 얽히자 자연의 말소리가 건너오는 듯했다.<232쪽>

『엔드 바 텐드』
해이수 지음│자음과모음 펴냄│260쪽│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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