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옛이야기 속 여성의 삶에서 읽는 페미니즘
[책 속 명문장] 옛이야기 속 여성의 삶에서 읽는 페미니즘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12.14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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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우리 옛이야기는 이제 ‘전래 동화’라는 허울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야기의 상징과 논리 안에 담겨 있는 삶의 진실은 현대사회에서도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옛이야기를 대할 때 흔히들 ‘황당무계, 허무맹랑’ 등의 단어를 미리 장착한 상태에서 접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태도가 이야기의 진짜 의미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갖게 한다. 허구적인 이야기로 구성되는 과정에서 다소 과장되고 현실과 동떨어진 듯 서술될 수 있는데, 그것을 ‘문학적 형상화’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현실의 반영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일들 중 정말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일들 혹은 아주 재미나서 두고두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 혹은 정말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들에 대해서 기억하거나 이해하려 애쓰며 만들어내는 것이 이야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인의 시각에서 함부로 재단할 일은 아니나 무엇에 초점을 두고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이야기 안에서도 굉장히 엄중한 삶의 진실들이 여러 층으로 발견되는 것을 확인하곤 한다. 이야기 공부의 재미는 거기에 있으며, 우리가 여전히 옛이야기를 존중하고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 하는 이유다. 

옛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이 책은 기획됐다. 흔히들 우리 옛이야기는 백성을 교화할 목적으로 특정 가치관을 주입시키기 위해 만들어서 퍼뜨린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그 속에서도 발견되는 여성의 삶에 대한 처절한 인식들을 확인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제도적으로 변화 발전돼 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부동의 시각들이 분명히 있고, 그것을 서사적으로 확인함으로써 현대 여성의 삶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혜안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하면 여전히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성은 물론이고 때로 여성들도 그렇다. 그 불편함은 아마도 페미니즘을 잘 알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페미니즘을 여성들이 기득권을 획득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로 보거나,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하는 것으로 보는 오해 때문에 생겨난 불편함인 것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아우르는 약자들의 외침이다. 여성은 가장 많은 수의 약자일 뿐이고, 페미니즘을 통해 사회 여러 방면의 약자들을 대변하고 있다. 그것은 여성만큼이나 그 수가 많은 남성들과 다양한 약자들이 모두 함께 행복하게 잘 살며 존중받아 마땅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으로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고, 그것에 대한 여러 가지 불편한 오해들을 불식시키는 데 옛이야기만큼 좋은 소재는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역시 옛이야기 속의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여전히 여성을 대상화한 범죄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그것이 범죄임을 알면서도 연대해 즐기는 남성 문화가 만연해 있다. 그나마 이런 문제들이 전면에 드러나고 소수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예전보다 나아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개별 사안들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편을 갈라 대립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좀 더 성찰하고 탐구해 본질을 파악하려 애쓰는 태도가 필요하다. <5~8쪽>

『배또롱 아래 선그믓』
권도영·송영림 지음·권봉교 그림│유씨북스 펴냄│264쪽│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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