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나무들은 움켜쥐었던 것들을 풀어버린다./말들을, 하나의 급류를, 녹색 구토를 쏟아낸다./온전한 말을 틔우고자 한다. 어쩌겠는가!/가능한 방식으로 질서가 세워지리라!/아니, 실제로 질서가 세워진다!” (「계절의 순환」 中)
비, 양초, 오렌지, 빵, 달팽이…. 평생 사물에 관한 시를 써 프랑스에서 ‘사물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프랑시스 퐁주의 대표작 『사물의 편』이다. 1921년 등단한 후 20여 년간 써온 작품들을 모아 1942년 펴낸 이 시집은 특히 퐁주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이다.
1942년 이 시집이 더욱 센세이셔널했던 이유는 당시 흔했던 관념적·서정적 문학이나 유행하던 초현실주의나 실존주의와 구별됐기 때문이다. 늘 사전을 옆에 끼고 과학적 지식과 사색을 기반으로 쓴 시들은 ‘사물주의 시학’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으며 ‘있는 그대로’의 문학을 추구했던 60년대 ‘텔켈’(Tel quel) 그룹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솔직하고 평범한 언어로 사물을 묘파했기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그 사색의 깊이는 하나의 사물에서 얻어낼 수 있는 극한까지 닿아 펼쳐진다. 시들은 사물을 몇 달에서 몇 년에 걸쳐 집요하게 관찰한 결과물이기에 시에 담긴 사물을 직접 보거나 상상해서 읽는다면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사물의 편』
프랑시스 퐁주 지음│최성웅 옮김│읻다 펴냄│184쪽│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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