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국영화 흥행 BEST5 중 ‘벡델 테스트’ 통과한 영화는?
2019년 한국영화 흥행 BEST5 중 ‘벡델 테스트’ 통과한 영화는?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2.11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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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란 1985년 미국의 여성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자신의 만화 『주목할 만한 레즈들』에서 고안한 ‘영화 성평등 평가 방식’이다. 최근 벡델 테스트는 그해 개봉한 영화 중 남성 중심의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계량화하기 위해 사용된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명 이상 나올 것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대화 내용에 남성과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내용이 있을 것 등 세 가지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쉽게 말해 이름을 가진 두명 이상의 여성이 남성이 아닌 주제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면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것. 얼핏 보면 수월할 것 같지만 의외로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많지 않다. 지난 2월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8 한국영화 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2018년에 개봉한 한국영화(순제작비 30억원 이상)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국가부도의 날>, <도어락>, <마녀>, <상류사회>, <스윙키즈>, <완벽한 타인>, <인랑>, <치즈인더트랩>, <허스토리>, <협상> 등 총 열편이었다(이상 제목순).

그렇다면 2019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흥행 5순위 내에 들어가는 영화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 기준에 부합하는 영화는 무엇일까?

올해 한국영화 흥행 1위작은 지난 1월 개봉해 누적관객수 1,626만명을 기록한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이다. 이 작품은 마약반 형사들이 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우연히 통닭집을 인수, 그 통닭집이 일약 맛집으로 거듭나면서 벌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재치 있게 그려낸 코미디 영화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조연급 여성은 총 두명이며 특별출연과 단역을 포함하면 모두 네명이다. 이들 중 이름을 가진 사람은 ‘장형사’ 역의 이하늬, ‘선희’ 역의 장진희이다(영화에 등장하는 주연 배우 모두 ‘O형사’로 지칭되기 때문에 ‘장형사’를 이름으로 간주).

하지만 장형사와 선희가 남성 이외의 주제로 대화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영화 후반부에 두 여성이 격투 상황으로 대면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남성(‘마형사’-진선규)과 관계된 것이므로 벡델 테스트 통과 기준에 저촉된다.

2위는 지난 5월 개봉해 누적관객수 1,008만명을 기록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영화는 세 가족의 경제적 격차로 인한 비극을 블랙 코미디로 녹여낸 작품으로 제72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기생충>에 등장하는 주‧조연급 여성은 총 다섯명으로 ‘연교’ 역의 조여정, ‘기정’ 역의 박소담, ‘문광’ 역의 이정은, ‘충숙’ 역의 장혜진, ‘다혜’ 역의 정지소이다. 영화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명 이상 나오며 남성이 아닌 주제로 대화하는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특히 문광과 충숙이 대면했던 이른바 ‘인터폰 신’은 영화에서 가장 압도적인 장면으로 회자된다.

3위는 지난 7월 개봉해 누적관객수 942만명을 기록한 이상근 감독의 <엑시트>이다. 이 작품은 유독가스로 큰 혼란에 휩싸인 도시에서 평범한 두 남녀가 갖가지 기지를 발휘해 시민들을 구원하는 모습을 그린 액션 영화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조연급 여성은 총 여섯명이며 이중 이름을 가진 여성은 ‘의주’ 역의 임윤아, ‘현옥’ 역의 고두심, ‘정현’ 역의 김지영이다. 영화에는 의주와 현옥, 정현이 칠순 잔치를 비롯한 여러 장면에서 남성 이외의 주제로 대화하는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4위는 지난 8월 개봉해 누적관객수 478만명을 기록한 원신연 감독의 <봉오동 전투>다. 영화는 1920년 만주 봉오동에서 독립군이 일본군을 크게 격파한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조연급 여성은 ‘임자현’ 역의 최유화, ‘춘희’ 역의 이재인 등 총 두명이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5위는 지난 9월 개봉해 누적관객수 457만명을 기록한 손용호 감독의 <나쁜 녀석들: 더 무비>이다. 영화는 수감 중인 범죄자가 흉악범을 잡는 극비 프로젝트 ‘특수범죄수사과’의 활동을 실감나게 그린 범죄‧액션 영화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조연급 여성은 특별출연을 포함 총 다섯명이며 이중 이름을 가진 여성은 ‘곽노순’ 역의 김아중, ‘한미정’ 역의 한정현, ‘최선미’ 역의 전익령, ‘유미영’ 역의 강예원 등 모두 네명이다. 영화는 곽노순과 한미정, 최선미의 대화 장면을 보여주지만 모두 남성과 관계된 것으로써 통과 기준에 저촉된다.

정리하면 올해 흥행작 1~5위 중 <기생충>과 <엑시트> 정도가 벡델 테스트 통과 기준에 부합한다. <극한직업>과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각각 이하늬와 김아중이 주연 배우로서 비중 있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다수의 남성 배우 속 한명으로 표상되고, 극중 여성들 간의 교감 및 연대가 남성과 관계돼 있다는 한계를 보였다. <봉오동 전투>의 경우 최유화가 독립군 저격수로서 존재감 있는 연기를 펼치지만 이 역시 벡델 테스트 통과 기준엔 미치지 못한다.

로라 멀비의 기념비적인 에세이 『시각적 쾌락과 서사 영화』에 따르면, 영화에서 남성은 늘 ‘바라보는 자’였고, 여성은 그러한 남성의 시선에 포획된 ‘관음의 대상’이었다. 내년에는 이 같은 젠더적 위계가 보이지 않는, 여성이 단독자로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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