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독서, 할 거면 제대로 하자 『쓸모있는 책 읽기』
[책 속 명문장] 독서, 할 거면 제대로 하자 『쓸모있는 책 읽기』
  • 전진호 기자
  • 승인 2019.12.09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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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모든 동물은 평등할까?

나폴레옹은 돼지이다. 그리고 두목이다. 반란을 성공시킨 뒤 동료 돼지들과 협의하여 〈동물주의 원칙 7계명〉을 완성해 발표한다.

1. 두 다리로 걷는 자는 누구든지 적이다.
2. 네 다리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자는 모두 우리의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농장의 모든 동물들은 이 계명에 찬성한다. 이를 인간에게 변형, 적용시킨다 하여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물며 동물들이 반대할 이유가 있겠는가? 동물들은 신이 나서 건초밭으로 달려가 일을 하려 한다(동물농장의 본업은 ‘노동’이다). 바로 그때 암소 3마리가 퉁퉁 불은 젖을 짜달라고 요청한다. 사람이 모두 쫓겨나 젖을 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돼지들은 즉시 젖을 다섯 양동이나 짰다. 누군가 물었다. “그 우유를 어떻게 하려 합니까?” 나폴레옹이 대답한다.
“그것은 잘 처리될 것이오…. 동무들! 앞으로 가시오. 건초가 기다리고 있소.”
과연 우유 다섯 양동이는 어떻게 처리됐을까?
아무도 묻지 않는다. 잔인한 존스에 의해 운영되던 〈매너 농장〉이 위대한 지도자 나폴레옹의 투쟁 덕분에 〈동물농장〉으로 이름이 바뀌고 자신들이 주인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었다. 개 블루벨·제시·핀처, 숫말 복서, 암말 클러보·몰리, 흰 염소 뮤리엘, 당나귀 벤자민, 까마귀 모제스… 그리고 고양이, 오리들, 쥐들 모두 공평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간다. 기껏해야 다섯 양동이에 불과한 우유의 행방을 따지지 않는다. 모두 예전보다 조금씩 덜 먹고, 더 일하지만 인간에 의해 착취받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만족한다. 그리하여 즐거운 노래가 농장에 가득 울려 퍼진다.

풍요한 영국의 들판에는 / 오직 동물들만 활보하리라.
코에서는 굴레가 사라지고 / 등에서는 멍에가 벗겨지리라 /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슬고 무자비한 채찍은 이제 더 이상 소리내지 못하리라.

과연 언제까지 그 노래가 울려 퍼질까? <81~83쪽>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 이야기이지만 삶의 교훈을 설파해주는 잠언서(箴言書)로 보아도 된다. 괴테라는 작가는 그 이름부터가 엄숙하고, 무언지 모르게 성스러우며, 옆집에 산다 해도 범접하기 어려울 것 같은 경외감마저 든다. 일부 학자들은 독일문학을 처음으로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괴테라고 평한다. 사실 그의 작품들은 무겁고, 문장 역시 근엄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파우스트』를 쉽게 읽어낼 사람은 76억 명 중에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랑 이야기이면서도 삶을 살아가는데 교훈이 될 말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스스로 비난하면서도 태연할 수 있으니 참으로 묘한 존재이다”, “부지런히 상상력을 동원하여 지난날의 불행한 추억을 되새기려 하지 말고, 오히려 현재를 견디어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인간의 괴로움은 훨씬 줄어든다” “이 세상의 분쟁은 악의나 흉계보다는 오해와 타성 때문에 일어나는 편이 훨씬 더 많다” 등등.
이 소설은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후반부는 제3자가 사건의 결말을 설명해주면서 끝난다. 베르테르는 호감 가는 청년이지만 차츰 독자를 화나게 한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면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깨끗이 포기하고 새로운 상대를 찾아야 하건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자신만 학대한다. 나약한 청년이며 결단성도 부족하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하소연만 늘어놓는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찌질이’다.
물론 이 소설이 발표된 1774년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는 판이하게 다르다. 결혼의 신성성, 종교적 억압, 사회의 극보수적 인습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을 것이다. 그렇다 한들 사랑을 쟁취하는 방법마저 다른 것은 아니리라. 결국 베르테르는 ‘크리스마스이브까지 오지 말라’는 로테의 당부를 듣고 절망에 빠진다. 로테는 더 극적이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을 뿐이지만 소심한 베르테르는 오해를 하고 만다.
이후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를 불러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청춘들을 자살로 내몰았던 베르테르의 죽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절실히 사랑했던 로테가 건네준 권총으로 마무리된다. 밤 12시에 자신의 오른쪽 눈 위를 쏘았고, 다음날 정오 12시에 숨을 거두었다. 그가 로테에게 한 마지막 간청은 분홍색 리본을 함께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이 분홍색 리본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가슴에 달고 있었던 것입니다”라는 이유로.
자살로 확인된 후 밤 11시에 상두꾼이 영구를 메고 갔으며, 성직자는 한 사람도 따라가지 않았다. 기독교에서 자살은 타살보다 더 나쁘다고 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위안은, 죽기 전날 베르테르와 로테는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죽은 자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면 로테는 사랑을 주고 절망을 준 것이 아니라, 절망을 주고 사랑을 준 것이다. <105~107쪽> 

『쓸모있는 책 읽기』
김호경 지음 | 말글빛냄 펴냄│356쪽│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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