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가 찾지 못한 것… 박찬욱 ‘복수 삼부작’과 차이는?
‘나를 찾아줘’가 찾지 못한 것… 박찬욱 ‘복수 삼부작’과 차이는?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12.0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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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를 찾아줘' 스틸컷 [사진= 네이버영화]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달 27일 개봉한 배우 이영애 주연의 영화 <나를 찾아줘>(연출 김승우)가 5일 기준 이번 달 매출액 순위 2위를 차지하며 순항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이후 15년 만에 다시 펼쳐진 이영애의 복수극이 꽤나 성공적이라는 평이다. 일각에서는 이 영화를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아직 박찬욱 감독의 예술적인 복수극들과 비교하기엔 왠지 2% 아쉽다. 박찬욱은 깼으나 김승우는 깨지 못했기 때문이다.  

흥행하는 복수극의 조건은 뭘까? ‘주인공이 당하고, 자신을 괴롭혔던 거악(巨惡)에게 복수한다.’ 복수극의 플롯을 살펴보면 감이 올지도 모르겠다. 약자였기에 비참하게 당해왔던 주인공이 극이 진행되면서 강자인 악의 우위에 서게 되고, 처절한 복수를 감행한다. 복수극은 이렇게 주인공과 거악, 약자와 강자의 위상 전복(顚覆)을 즐기는 장르다. 따라서 주인공이 더욱 약하고 더욱더 비참하게 당할수록, 악이 더 강하고 더욱더 잔악무도할수록 복수극은 흥행한다. 

<나를 찾아줘> 역시 이러한 복수극의 장르적 문법을 제대로 지킨다. 대형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주인공 ‘정연’은 남편과 함께 잃어버린 아이를 6년 동안 찾아다닌다. 당연히 정상적인 생활은 어려워지기만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장난전화를 받고 집을 나선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지인들은 정연의 처지를 이해하기는커녕 생각 없이 뱉은 말로 상처를 주고, 남편의 보험금을 갈취하기까지 한다. 짓밟히는 것은 정연만이 아니다. 영화는 정연의 아들 윤수와 닮은 민수가 섬 노예로 생활하며 유린당하는 모습을 피해자의 시선을 담아 공포스럽게 묘파한다. 정연이 섬사람들에게 복수하는 후반부는 그렇기에 더욱 임팩트가 크다.  

‘복수 삼부작’이라고 불리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도 이러한 위상의 전복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이 세 영화의 주인공들은 안쓰러울 정도로 약하고, 처참하게 짓밟힌다. <복수는 나의 것>의 주인공 ‘류’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인인데 신장이식을 받지 못해 고통받는 누나까지 부양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다니던 공장에서 해고되고, 퇴직금과 자신의 신장 한쪽을 팔아서 누나의 신장을 마련해보지만, 이제는 수술비가 부족해서 누나가 수술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안쓰럽지만 주인공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누나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 거짓으로 아동을 납치하지만 수술비를 받아온 바로 그 날 누나가 자살한다. 그리고 누나를 묻으러 간 고향 강가에서 거짓으로 납치한 아이가 실수로 물에 빠져 죽어버린다.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도 마찬가지다.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는 영문도 모른 채 군만두만 먹으며 15년간 감금을 당하고, 감금 도중 아내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감금에서 풀려나서는 자신이 딸과 잠자리를 한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살인마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13년간 옥살이를 한 <친절한 금자씨> 금자의 고통도 만만치 않다. 세 영화 모두 이렇게 약자의 극심한 고통을 보여줬기에 이후 전개되는 복수는 관객에게 엄청난 위상 전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왼쪽부터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포스터 [사진= 네이버영화]

이렇듯 <나를 찾아줘>나 ‘복수 삼부작’이나 복수극의 문법을 따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찬욱의 영화에는 <나를 찾아줘>에는 없는 2%가 있다. 첫째로 박찬욱은 약자인 주인공이 거악을 전복한다는 복수극의 굳어진 문법을 깬다. 

예컨대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복수의 대상이 악인이 아니었음이 밝혀진다.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 류의 복수극 외에도 영문도 모르고 딸의 납치와 죽음을 마주하게 된 동진이 주인공 류에게 벌이는 복수극이 하나 더 전개된다. 그런데 동진이 류에게 복수하는 장면에서 동진은 눈물을 흘리며 사죄한다. 자신이 복수하는 대상이 악인이 아니며, 악한 의도가 없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관객은 동진의 복수를 이해하지만, 통쾌한 기분을 느끼지는 못한다. 악을 짓밟는 전형적인 복수극의 플롯과 달리 약자가 약자를 어쩔 수 없이 짓밟았기 때문이다.

<올드보이>에서도 악인을 짓밟는 후련함은 일지 않는다. 아내 살해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중국집 군만두만을 먹으며 15년간 감금을 당한 평범한 샐러리맨의 복수극을 그린 이 영화는 알고 보니 또 다른 복수극이었다. 주인공이 15년간 감금을 당했던 이유는 과거 그가 저질렀던 죄의 업보였다. 알고 보니 주인공 때문에 누나를 잃어버린 이가 주인공을 감금함으로써 복수를 이뤄낸 것이었다. 이렇듯 악인이 아닌 이에게 복수하는 이야기,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당위가 아닌 어쩔 수 없음으로 인해 울며 겨자 먹기로 행해지는 복수는 전형적인 복수극의 클리셰를 부순 것이었다. 

또한, 박찬욱은 복수란 ‘함께 더러워지는 것’이라는 클리셰 역시 깼다. <친절한 금자씨>는 복수라는 난잡한 과정을 눈처럼 깨끗한 고고함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다른 복수극들과 결을 달리했다. 영화는 다양한 상징과 스토리를 사용해 금자의 복수를 고결하게 만들었다. 일례로 금자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과거 자신이 저질렀다고 거짓으로 자백한 죄에 대한 용서까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내며 빌었다. 비유하자면 더러운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서는 치우는 사람의 손이 더러워질 수밖에 없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 손을 강박적으로 깨끗하게 유지하며 쓰레기를 치워낸 셈이다. 완전무결한 복수를 그려낸 것이다.  

평론가이자 소설가 듀나는 책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재미있는 영화 클리셰 사전』에서 “많은 뛰어난 장르 작가들에게도 클리셰는 매력적입니다. 그들은 이 사랑스럽게 진부한 공식들을 멋대로 뜯어고치거나 아니면 극단적으로 충실하게 따라가며 즐깁니다. 놀이터는 충분합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클리셰를 따르느냐 깨부수느냐는 창작자의 마음이겠지만, 더 예술적이기 위해서는 후자를 택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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