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엄PD의 세상과 만나는 음악이야기 『음악, 좋아하세요?』
[책 속 명문장] 엄PD의 세상과 만나는 음악이야기 『음악, 좋아하세요?』
  • 전진호 기자
  • 승인 2019.12.0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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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흑인 블루스 가수들이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노래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애환을 통해 사회의 문제를 건드렸듯이 김대중의 ‘300/30’ 역시 그렇다. 옥탑방이나 반지하방을 전전해야 하는 힘없는 자들을 위한 노래이다. 두어 번 들으면 노래방에서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멜로디도 단순하다. 친숙한 멜로디에 동시대의 사람들의 애환과 시대의 고민을 이야기하니 이것은 좋은 블루스고 좋은 음악이다.<47쪽>

잔인한 봄, 마음의 위로를 위해 듣게 된 <마태수난곡>. 이 곡은 예수의 수난에서 끝이 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가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반면 아이들은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도 안다. 나는 어른 된 자의 부끄러움을 끌어안고 다시는 아이들을 허망하게 보내지 않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조용히 키울 뿐이다. 창밖으로 옅은 안개 속 바다가 가느다랗게 떨린다.<79쪽>

긴 여행이 아니어도 하루나 이틀쯤 낯선 도시의 여행자가 될 수 있는 시간이다. 오래된 첼로 소리는 일상을 떠난 여행자의 ‘바람구두’가 되어 주기에 충분하다. 평소의 박자에서 살짝 어긋나지만 또한 일상의 박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짧은 여행이 좋다. 서두를 필요 없다.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길을 걷는 박자로 가을이 올 것이다.<211쪽>

좋은 음악을 듣는 다는 것은 그 음악을 이해하고 감응하고 나눌 수 있는 나를 기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균형감이다. 음악에서의 균형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가장 가까운 방법은 라디오다. 특히 클래식을 처음 듣는다면 큰돈 쓰지 말고 당장 라디오를 켜면 된다. 내가 라디오 PD 출신이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라디오만 한 음악 교과서는 없다. 또한 라디오는 보편적 음악 복지의 결정판이다. 무상으로 세상의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다.<324쪽>

겨울이다. 낭만주의자들처럼 내면으로 숨어들기에도 좋은 계절이지만 타인의 고통에 시선을 돌려보면 더욱더 빛나는 계절이다. 눈 내린 벌판도 여럿이 함께 걸으면 덜 추울 테니 말이다. 나의 내면으로 한 걸음 들어가서 얻게 되는 깨우침만큼이나 세계로 한 걸음 후퇴해서 얻는 배움도 크기 때문이다.<333쪽>

익숙한 멜로디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옛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흘러나오는 음악이 마음에 들어서 가게 문을 열고 주인에게 “지금 나오는 노래 좋은데, 제목이 뭐에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음악에 빨려들어 가듯 동네 작은 음반가게 앞에 발을 멈추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버스정류장 음반가게 사장님은 자신이 그날 틀었던 노래를 누군가 이렇게 오래 기억하게 되리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몇 년 전부터 동네 서점이 부활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반가운 일이다. 작은 음반가게도 다시 등장하면 좋으련만.<369쪽>

『음악, 좋아하세요?』
엄상준 지음│호밀밭 펴냄│424쪽│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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