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고단한 삶 위에 피어난 산초 같은 詩
[포토인북] 고단한 삶 위에 피어난 산초 같은 詩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12.04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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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시대의 주류에서 소외돼 더욱 서러웠던 사람들의 고단한 삶 위에 피어난 매운 산초 같은 시'. 그런 시가 이 책에 가득 담겼다. 저자는 오랜 시간 한시를 연구해온 김경숙 교수. 고전문학이 좋아 이화여대와 서울대에서 국어국문을 공부한 후, 이화여대, 가천대, 한경대, 한신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한 그는 한시에서 시대를 막론한 '흐름'을 잡아낸다.

저자는 한시 작품을 통해 작가가 살던 시대의 삶을 그려내는데, 시대 배경에 관한 객관적 사실뿐 아니라 저자의 상상력을 버무려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16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다양한 인물의 삶을 그려내면서 그 안에서 현재 우리들의 처지와 유사한 면을 끄집어 낸다. 

'조선선 입진지도朝鮮船 入津之圖'. 조선통신사의 배가 쓰시마 후추 항구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신유한도 이와 비슷한 배를 타고 갔을 것이다. 게이오기주쿠 대학 도서관 소장. [사진=소명출판] 
'조선선 입진지도朝鮮船 入津之圖'. 조선통신사의 배가 쓰시마 후추 항구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신유한도 이와 비슷한 배를 타고 갔을 것이다. 게이오기주쿠 대학 도서관 소장. [사진=소명출판] 

우리 노모는 명년이면 66세가 되시는데 이 몸이 오늘밤 조각배를 타고 풍파 사이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실 것이다. 이에 당나라 시인의 '年將盡夜 萬里未歸人 일년장진야 만리미귀인'이란 글귀를 외니 정경이 그림과 같았다. 한글자씩 운韻을 삼아서 절구絶句 열 수를 지었다. -신유한-

신유한(1681~1751)은 18세기 전반을 살았던 서얼 문사로 시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얼은 사대부 첩의 자손을 말하는데, 적자와 구별돼 서자라 불리며 차별을 받았다. (실제로) 신유한은 소과에 급제하고 성균관에 입학했으며 시에 뛰어나다는 명성을 얻었으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과거에 장원을 하고서도 벼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살 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눈을 나라 밖으로 돌려 해외를 동경하게 됐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중국과 일본으로의 사행使行이었다. 조선통신사의 일본 내 행적을 남긴 일기를 사행록使行綠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행록이 바로 신유한이 저술한 『해유록』이다. 1719년 4월 11일 한양을 출발해 6월 20일 쓰시마에 도착, 이후 12월 29일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한 신유한은 문득 '一年將盡夜 萬里未歸人 일년장진야 만리미귀인'이란 글귀를 떠올린다. '한 해가 저무는 밤, 만리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이란 뜻. <34~46쪽>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 조선 후기 발달한 도시의 모습을 그린 여덟 폭 병풍 그림의 일부인데, 김도수가 생각한 한양의 모습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소명출판]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 조선 후기 발달한 도시의 모습을 그린 여덟 폭 병풍 그림의 일부인데, 김도수가 생각한 한양의 모습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소명출판]

등불 다는 저녁  -김도수-

숙종 시절 한양은 번성해
사월 초파일에 등불이 별 같았네.
우리 형제들 좋은 술 들고
남산의 정자에 해마다 올랐었지.
집집마다 등을 서너다섯 개씩 달아 
등불이 삼만팔천 가옥에서 빛났네. 
모든 백성이 무사해 태평을 즐기고
실컷 마시고 먹으며 절로 노래하고 춤췄네
(중략) 

'등석燈夕'이란 등불을 다는 저녁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집과 거리에 등을 달고 해 질 무렵부터 불을 밝혀 등불 구경을 한다. 관등觀燈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예로부터 등석은 정월 대보름에 행했다. 그러다가 고려시대 12세기 이후에는 사월 초파일에도 행하게 됐다. 김도수의 기억 속에서 한양은 아름답고 번성했던 곳이다. 더구나 등석일이 되면 집집마다 등을 달아 밤이 되면 한양에 별들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대체로 식구 수대로 등을 달았다고 하니 그 불빛이 별처럼 셀 수 없었을 것이다. 등석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남산이나 낙산 등 높은 산에 올라 한양 안에서 반짝이는 별빛을 내려다보는 놀이를 했다. <93~95쪽> 

정선의 '필운상화弼雲賞花' 봄날 필운대에 올라 꽃구경하는 모습으로 남산과 인왕산 사이 한양에 꽃이 가득 피고 신록이 우거졌다. [사진=소명출판] 
정선의 '필운상화弼雲賞花' 봄날 필운대에 올라 꽃구경하는 모습으로 남산과 인왕산 사이 한양에 꽃이 가득 피고 신록이 우거졌다. [사진=소명출판] 

필운대 꽃구경 -박지원-

희롱하는 나비를 미쳤다고 어찌 나무라겠는가.
사람들 오히려 나비 따라 향기로운 인연 맺으려 뒤쫓아 가니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너머에 한낮의 봄은 푸르고 
도성 거리 저자 떠들썩하니 먼지 자욱하네. 
(중략) 

이 시는 박지원이 인왕산 필운대에 올라 꽃구경을 하는 정경을 노래했다. 필운대는 동남쪽 봉우리에 있는 기슭이다. 그러므로 필운대에 오르면 눈앞에 한양 도성이 펼쳐졌다. 남쪽 멀리로는 관악산 청계산이 병풍처럼 서 있고, 가까이로는 백악산과 낙산남산이 둘러 있다. 그 사이로 도성 거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길이며 저자, 개천과 숲, 관청과 민가가 손에 잡히듯 눈에 들어왔다. 또한 필운대는 성 밖이 아니라 안에 있었다. 근처에는 인가가 많았고, 인가에서는 꽃나무를 많이 심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양 사람들은 봄철 꽃구경 장소로 반드시 먼저 이곳을 손꼽았다. 이를 '필운상화弼雲賞花'라 하는데 남산의 꽃구경인 '목멱상화木覓賞花'와 함께 으뜸으로 쳤다. <134~138쪽> 

김흥도의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 1785년 황해도 안릉의 신임 현감이 부임하는 모습을 그린 행렬도의 일부인데, 말을 탄 여성들은 비기婢騎, 동기童騎, 기騎라고 적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소명출판] 
김흥도의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 1785년 황해도 안릉의 신임 현감이 부임하는 모습을 그린 행렬도의 일부인데, 말을 탄 여성들은 비기婢騎, 동기童騎, 기騎라고 적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소명출판] 

여인의 서러움 -이매창-

이별 한에 서러워 중문 닫고 있으려니
비단 적삼 향기 없고 눈물 자국뿐.
홀로 깊은 규방에 있어 인적 없고
마당의 가랑비는 황혼 빛을 가리네. 
(중략) 

매창은 천민 출신의 시인인 유희경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스무 살 무렵에 부안으로 놀러온 유희경과 만났다. 당시 매창은 부안에서 시를 잘 짓는 기녀로 유명했고, 유희경은 한양에서 이름난 시인이었다. 이들은 만나자마자 서로 시를 주고받았는데, 이를 통해 상대를 알아봤고 사랑에 빠졌다. 28살이라는 나이 차는 두 사람의 정신적 교류와 사랑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뒤 이들은 헤어지게 됐다. 임진왜이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매창이 유희경을 다시 만난 것은 15년 뒤인 1607년이었다. 30대 중반의 기녀와 환갑을 넘긴 시인이 다시 만났지만 그 만남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71~275쪽>


『한시에서 삶을 읽다』
김경숙 지음 | 소명출판 펴냄│371쪽│2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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