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폼장] 성매매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용감한 기록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지대폼장] 성매매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용감한 기록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 전진호 기자
  • 승인 2019.12.03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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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내 삶이 원망스럽고, 아픈 내 마음을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외로움이 싫었다. 술집 여자로 늙어가는 내 모습이 저주스러웠다. 이대로 바다로 뛰어들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바위 위에서 몸을 일으켰지만 시커먼 바다로 차마 몸을 던지지 못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없이 울었다. 죽을 용기도 없는 자신을 미워하고 또 미워했다.<143쪽>

꿈속에서 또 터널 속을 걷는다. 이번에는 간간히 불빛이 보이기도 했다. 웬일로 불빛도 보이는지, 언제쯤이면 이 꿈도 끝날 것인지. 터널 속을 걷는 나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발에는 곧 벗겨질 것처럼 사이즈가 큰 신발을 신고 터벅터벅 걸었다. 걷고는 있지만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몰랐다. 어디가 끝인지도 모른 채 그저 불빛이 보이는 곳을 향해 걸었다.<277쪽>

그날이 그 동생과 마지막으로 보던 시간이었다. 일주일 뒤 그 동생이 자살했다고 전해 들었다. 허탈했다. 나를 만나러 온 그날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해줬어야 했는데,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 빚이 뭐라고 죽기까지 하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거야?”라고 묻던 동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늘을 바라보며 먼저 떠나간 그 동생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 동생이 죽어서 선불금을 받아내지 못해 억울하다고 했다던 업주는 장례식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급 승용차를 구입했다.<264~265쪽>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어서 요리를 배우기도 했다. 이제는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아프고 고달팠던 내 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시장을 둘러보면서 음식 재료를 장만하고, 상인들에게 조리법을 물어봐가며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밥을 잘 못해서 설익기도 하고, 죽밥이 된 적도 있고, 음식을 까맣게 태우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게 즐거웠다.<379쪽>

장례식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참 많은 죽음을 보고 산다고 생각했다. 업소에 있을 때 가까이 지내던 동생이 죽었고, 간접적으로 성매매 여성의 사망 소식을 접할 때도 있었다. 그 죽음을 바라볼 때면 어떨 때는 내가 죽은 것 같았고, 어떨 때는 그곳에 두고 와서 미안한 마음이었다.<383쪽>

그렇게 웃는 그녀에게 죽음을 이야기하기가 힘들어 입을 떼지 못했다. 어릴 적 가족들에게 당한 폭력을 담담히 말하는 그녀가 애처로웠다. 그녀가 살아갈 곳은 거리였다. 어린 나이에 그녀가 처한 환경들이 결국 성매매로 이어졌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 되었다.<388쪽>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봄날 지음│반비 펴냄│428쪽│18,000원

* 지대폼장은 지적 대화를 위한 폼나는 문장이라는 뜻으로 책 내용 중 재미있거나 유익한 문장을 골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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