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용인이씨 대종가집 후손들의 삶의 기록 『선조들의 삶, 우리들의 삶』
[포토인북] 용인이씨 대종가집 후손들의 삶의 기록 『선조들의 삶, 우리들의 삶』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1.28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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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가문의 역사는 나라의 역사로 환원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한 가문의 흥망성쇠는 가문을 넘어 지역의 뿌리를 엿볼 수 있고 동시에 한 나라의 단면을 알아볼 수 있는 지표로 기능한다.

이 책은 용인이씨 1천100여 년의 역사와 선조들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고려 말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한 축을 이루며 살아온 용인이씨 선조들의 이야기와 해방 전후 현대사를 살아온 그 후손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1638년 병자호란 당시 김준룡 장군이 광교산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하여 세운 전승비. [사진제공=바이북스]

나라의 통치세력의 기반인 용인이씨라는 양반의 가문 후예로 공 또한 고스란히 나라의 치욕과 고통을 함께했을 것이다. 더구나 병자호란이 1638년 용인이씨의 터전이 자리한 광교산에서 전라병사 김준룡이 적장 액부양고리를 죽이고 승첩을 거두었으나 전군이 몰살당한 일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후 공의 삶은 전란으로 변화한 조선의 사회 정치적 변화 속에 은거한 채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효종 때 실시된 대동법의 토지 정책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았고, 새로운 화폐 상평통보 또한 사용했을 것이다. 또한 현종 때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의 복상문제와 이은 인선왕후의 상례를 두고 지루하게 계속된 예론정쟁의 정치시류 속에 선조들의 충절을 조용히 되새기며 품격 있는 삶을 유지했을 것이다.<61~62쪽>

공의 아호로 명명한 봉계당 전경 [사진제공=바이북스]

31세 이재유는 중시조 이중인과 아들인 15세 이사영 이후 가문의 정신이 되는 효로 세상을 감동하게 한 인물이다. 공은 정조 10년인 1786년 태어났으며 자는 맹교(孟敎), 아호는 봉계(鳳溪)이다. 참의공파 후손들에게 공이 특별한 것은 신봉의 택지개발로 새롭게 조성된 참의공파 묘역의 재실 봉계당(鳳溪堂)이 바로 그의 아호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공의 살아생전 뛰어난 행적을 본받고자 한 것이니, 묘비에는 공을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공은 정조 병오에 태어나 타고난 성품이 비범하였다. 부모에 효도하고 친구를 믿음으로 사귀었다. 한결같이 진실하고 덕과 신의로 말하고 행동했다. 덕의로 교화하였고 스스로 검소한 삶을 실천하였다. 모두 이효자라 하였다.”<79~80쪽>

목릉 전경. 조선 제14대 왕 선조와 의인왕후 박시 그리고 인목왕후 김씨를 모셨다 [사진제공=바이북스]

공은 생전 조선 제14대 왕 선조와 의인왕후 박씨, 그리고 인목왕후 김씨를 모신 목릉의 참봉과 종6품 봉직랑 능도감 김조관에 올랐으며 슬하에 네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두었다.

이보상을 비롯한 이현상, 이필상, 이용상, 이일상, 이준상, 이의상이 살았던 나라 조선은 이제 망국으로 이어지는 처참한 시대였다. 같은 형제라 해도 삶의 길이에 따라 망국을 본 형제와 그렇지 않은 형제로 나뉘게 된 것이다.<105쪽>

신봉 젊은이들이 많이 찾은 수원 중앙극장의 설날 모습. 1984년 촬영. [사진제공=수원역사박물관, 바이북스]

“통행금지도 생각나네. 통금시간이 되면 사이렌이 울렸잖아.”
“우리는 시골에 살아서 통행금지를 모르고 살았어.”
“사이렌이 불면 방범순찰대가 순찰을 돌며 단속을 했잖아. 걸리면 경찰서 가야 했어요. 그곳에서 자야 했지. 그러면 새벽 4시에 나와.”
“그래서 일부러 통금 시간이 되면 파출소에 들어가기도 했어.”
“그때는 간첩이 많았어요. 그래서 통금이 있었어.”
“그거 아세요? 충북에만 통금이 없었어요. 한 번은 장호원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가 여기서 12시까지만 있어보래. 재미있는 일 보여주겠다고. 그리고는 12시가 되니까 다리 하나를 건너가요. 거기가 충북이야.”
“나이트클럽에서 4시까지 놀다가 나오기도 했어.”
“크리스마스이브 날하고 연말 12월 31일만 통금이 없었어요. 아유 그날이면 다 나와 가지고 시내 거리는 부딪쳐서 다니질 못해. 가게들은 다 따블 금액으로 받고.”
“그날이 명절날이야. 일탈의 날이지. 그날이면 마음이 들떴어. 그날 집에 들어가면 왠지 바보 같고.”
“다 수원으로 나왔어요. 그리고는 다음날 들어가는 거지. 쓸데없이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그랬어.”<164~165쪽>

『선조들의 삶, 우리들의 삶』
이기담 지음│바이북스 펴냄│368쪽│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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