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복고열풍, 올해가 ‘노스텔지어의 해’가 된 타당한 이유
한국사회의 복고열풍, 올해가 ‘노스텔지어의 해’가 된 타당한 이유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11.28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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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극장에 걸렸던 복고 영화들(상)과 계몽사에서 복간한 아동 전집 '디즈니 그림 명작'(하)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최근 소위 대박이 난 아동 전집이 있다. 계몽사에서 복간한 ‘디즈니 그림 명작’이다. 머릿속에 어렴풋이 무언가가 떠오른다면 그것이 맞다. 2030세대의 어린 시절에 그들의 부모인 4060세대가 선물했고, 함께 읽은 바로 그 전집이다.  

1982년 첫 인쇄에 들어가 1997년 마지막 인쇄를 했고, 이후 오랫동안 세상에 나오지 못했던 이 전집을 13년 만에 재판매한다는 소식에 구매자가 몰렸다. 계몽사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제작을 시작함과 동시에 사전예약을 받았는데, 최근 인쇄에 들어간 2,000세트가 모두 팔리고 여분으로 인쇄한 것까지 다 팔렸다. 계몽사 관계자는 “지난 13년간 회사에 지속적으로 구매요청이 있었다”며 “구판 인쇄 필름이 7년밖에 보존이 안 돼서 모두 소실됐다. 지난 3월부터 직원 세 명이서 기존 책을 일일이 포토샵으로 복원했고, 작업한 지 8개월여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세트당 60권으로 구성된 이 전집은 사전구매 가격이 38만원이며 일반구매가가 40만원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인쇄분이 모두 팔렸으며, 추가 구매를 위해 100여명이 대기하고 있는 상태다. 

아동 전집의 이러한 전례 없는 인기는 노스텔지어(nostalgia: 향수, 과거에 대한 동경, 회고의 정)에 기인한다. 40만원대에 이르는 이 전집의 주 구매층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고 싶은 어른들이다. 서점에는 매달 아동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책들이 쏟아지지만, 이들은 아이에게 선물할 책으로 굳이 ‘디즈니 그림 명작’을 구매한다. 노스텔지어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한편 이러한 전례 없는 인기는 올해의 거대한 소비 트렌드와도 연결된다. 돌아보면 2019년은 ‘노스텔지어의 해’(year of nostalgia)라고 불릴 정도로 콘텐츠 업계에서 다양한 ‘옛날’을 들고 왔다. 올해 상반기 영화계만 봐도 <알라딘> <토이스토리> <맨 인 블랙> <고질라> <사탄의 인형> 등 십여년 전에 인기를 누렸던 콘텐츠가 새로 제작돼 개봉했고, 일부는 큰 인기를 끌었다. 유튜브에서도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콘텐츠가 유행이었다. 일례로 방송사 SBS의 유튜브 채널 ‘SBS Catch’는 2003년 방영한 드라마 ‘올인’과 2004년 방영한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새롭게 편집해 올려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SBS KPOP CLASSIC’ 채널은 2000년 2월에 방영을 시작한 ‘SBS인기가요’의 과거 방송분을 24시간 틀어 ‘온라인 탑골공원’이라 불리며 인기를 얻었다.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콘텐츠의 인기는 연말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져 ‘피식대학’ 등 다수의 유튜브 채널에서 복고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으며, 관련 콘텐츠는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노스텔지어의 인기는 비단 콘텐츠 업계의 전유물도 아니었다. 지난 8월 롯데백화점은 롯데칠성음료와 협업해 옛 델몬트 주스병을 되살린 ‘델몬트 뉴트로 선물세트’를 내놨고, 주류업체 하이트진로는 1970년대 진로 소주를 재해석한 ‘진로이즈백’을 출시해 흥행했다. 식품포장용품 제조업체 크린랲은 창립 36주년을 맞아 1983년 첫 출시 당시 디자인을 그대로 재현한 레트로 패키지 한정판을 선보였으며, 식품제조업체 농심은 1982년에서 1991년까지 판매된 ‘해피라면’을 20년 만에 재출시했다. 글로벌 테이블웨어 제조업체 코렐은 1972년 출시된 ‘올드타운 블루’를 40년 만에 다시 내놨으며, 토탈리빙용품 제조사 한국도자기리빙은 과거에 주로 사용한 스테인리스 그릇을 새롭게 디자인해 ‘스텐실’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올해는 거리마다 간판에서 옛날 이름들도 자주 보였는데, 특허청이 지난 10년간의 상표 출원을 분석한 결과 복고풍 이름을 가진 음식점 등의 상표 출원이 4년간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렇게 올해 노스텔지어는 대한민국 소비의 주요 동력이었다. ‘디즈니 그림 명작’의 인기 역시 이러한 큰 흐름을 타고 더욱 상승한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제작진 역시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패션, 문화, 마케팅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2019년을 뒤흔든 가장 영향력 있는 트렌드를 하나 고르라면, 단연 ‘뉴트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적었다. 제작진이 말하는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옛날(retro)의 합성어로,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신세대에게는 신선함으로 다가오는 과거의 무언가인데, 노스텔지어가 그 기반이다.  

노스텔지어의 유행,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반복되는 이 시구처럼 그저 누구에게나 잊히지 않는 황홀한 과거가 있어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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