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머니’의 흥행에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
‘블랙머니’의 흥행에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1.2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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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머니>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영화는 때로 현실을 뛰어넘는다. 현실보다 황홀해서, 현실보다 참혹해서. 문제는 바로 후자에 있다. 참혹한 현실을 소재로 한 영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들춰내고, 현실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려는 영화. 그 모두가 힘들다면, 이런 문제가 있으니 함께 둘러앉아 진지하게 고민을 좀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음을 던지는 영화. 흔히 ‘사회 고발 영화’라 불리는 장르가 그것이다.

사회 고발 영화는 사회문제 영화(social problem film)라고도 한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사안을 극영화나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재현한 영화를 일컫는다. 정영권 영화평론가는 책 『영화장르의 이해』에서 “영화가 사회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면 모든 영화에는 많건 적건 사회적 측면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사회문제 영화는 바로 그런 사회적 측면을 쟁점화시켜 특별히 부각하고 강조하는 영화들”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회 고발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사회를 고발하는 성격’을 지닌다. 최근 개봉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정지영 감독의 <블랙머니>(2019) 역시 외환은행을 인수 및 매각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이른바 ‘론스타 사태’를 모티프로 한 영화이다. 이 과정에서 정‧재계 권력자들의 부패 행위는 ‘고발’과 ‘풍자’ 형식으로 재현된다. 정 감독은 이 외에도 <남부군>(1990), <부러진 화살>(2011), <남영동1985>(2012) 등 오랜 세월 사회 고발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으로 명성이 높다.

영화 <도가니>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황동혁 감독의 <도가니>(2011)는 영화가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변혁시킨, ‘무비 저널리즘’(movie journalism)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영화였다. 영화는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성폭행하고 학대한 실제 사건을 다뤘다. 개봉 이후 영화의 모티프가 된 ‘광주인화학교’가 폐교되고, ‘도가니법’(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는 등 사회적 파급효과가 상당했다. 영화의 원작인 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 『도가니』의 출간 이후 상황과 비교해보면, 실로 영화라는 매체의 파급력을 실감케 한다.

<도가니>의 흥행 이후 충무로에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영화들이 대거 개봉했다.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2015)은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등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자들의 추악한 민낯을 고발한 영화로, 특히 영화에서 묘사된 ‘성접대 장면’은 보는 이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최근 ‘별장 성접대’ 영상으로 파문을 일으킨 전 고위 공직자의 사건은 영화의 ‘성접대 장면’이 적어도 상상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사회 고발 영화는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015)과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은 각각 ‘재벌들의 갑질’과 ‘주한미군 독극물 한강 무단 방류 사건’을 액션과 괴수 장르로 녹여낸 사회 고발 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2017)와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2013)은 각각 ‘5·18민주화운동’과 ‘부림사건(1981년 9월 부산지역에서 발생한 용공조작사건)’을 모티프로 했는데, 미완의 역사적 사건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문제로 치환시킨 영화들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모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 <김군>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이러한 흐름은 다큐멘터리에서도 이어지는데, 김병기 감독의 <삽질>(2018), 강상우 감독의 <김군>(2018), 김지영 감독의 <그날, 바다>(2018), 박문칠 감독의 <파란나비효과>(2017)는 각각 ‘4대강’ ‘5·18 역사 왜곡’ ‘세월호’ ‘사드(THAAD)’ 등 사회적인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은 영화로 평가받는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 ‘사회 고발 영화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우리는 왜 이런 영화에 열광하는 것인가?’ 앞서 언급한 ‘무비 저널리즘’을 다시 얘기해보자. 강성률 광운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거대 언론은 정권의 편에 서서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영화인들이 영화를 무기로 공정한 저널리즘의 역할을 자처한 것”이라며 “(무비 저널리즘은) 사회의 부정과 비리, 왜곡된 구조를 영화를 통해 비판하려는 결연한 의지의 산물이자,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니 영화가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대중의 진실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사회 고발 영화는 대중들의 진실과 정의, 공정한 사회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 교수의 말처럼 사회 고발 영화는 “대중적 흥행이 아닌, 대중적 설득을 일차적 목표”로 하고 있다. 사회 고발 영화 중 기록적인 흥행을 거둔 작품은 바로 대중적 설득이 유효하게 적중돼 흥행으로까지 이어진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영화는 현실이 아니지만 현실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영화가 상영되는 순간만큼은 그 세계가 관객들의 인식체계 안에서 ‘현실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영화라는 세계를 경유해 내가 딛고 서있는 현실 세계를 진단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돌아본다. 말하자면 사회 고발 영화는 대중들의 상식과 감정의 울타리에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는 정치적 팻말을 세우는 역할을 한다.

대중들의 진실과 정의, 공정한 사회에 대한 욕구가 갈수록 증가하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회 고발 영화가 꾸준히 제작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비정상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회 고발 영화의 흥행에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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