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학종’은 왜 공공의 적이 됐을까? 『학종유감』
[책 속 명문장] ‘학종’은 왜 공공의 적이 됐을까? 『학종유감』
  • 전진호 기자
  • 승인 2019.11.22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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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2019년은 역사책에 ‘학종의 해’로 기록될 것 같다. 국회 인상청문회를 앞두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대학입시 관련 의혹이 한창이던 9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동남아 3개국 순방길에 오르기 직전에 중요한 메시를 던진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입시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입시제도가 공평하지 못하고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라면서 “특히 기회에 접근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에게 깊은 상처가 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교육제도적 관점에서 공정성 논란의 도마에 오른 학종이 전면 수술대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부터 정시 확대와 수능시험 개편론까지 제기됐다. 교육부도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다음 날부터 실무 작업에 들어갔다.<19쪽>

비슷한 두뇌라면 공부할 수 있는 시간과 사교육에 들일 재력이 있는 수험생이 훨씬 유리하다. 수능은 재학생보다 한 문제라도 더 많이 풀어본 반수‧재수‧삼수생 등 ‘N수생’이 상위권을 접수한 지 오래다. 요즘 재수하려면 1년에 최소 3,000만원이 든다. 흙수저라면 반수나 재수, 삼수는 그림의 떡이다.<43쪽>

학생은 물론 발 빠른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할아버지의 재력을 바탕으로 하는 게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자, 적응력이 빠른 사교육이 수요자 구미에 맞는 프로그램을 내놓으며 영토를 넓힌 것이다. 학종은 제도의 도입 배경과 취지만 놓고 보면 흠잡을 게 별로 없다. 고교교육 정상화와 대학의 창의인재 확보, 교육 당국의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인재 육성 등 삼박자를 두루 갖춘 제도다. 문제는 ‘기승전 대입’의 한국 사회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맹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91쪽>

학종이 뭇매를 맞고 있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학종이 추구하는 교육적 가치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세계 최장의 ‘입시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행복 추구권을 외면한 채 다시 획일적 입시 체제로 돌아가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정을 평가하는 학종으로 그나마 고교교육 정상화에 숨통이 트이고 학교 활동의 다양성도 살아나고 있는데, 학종을 없애거나 줄이는 방향은 잘못된 처방전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수능 중심 정시전형을 늘려가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시를 늘리는 것은 획일적인 입시 교육으로 돌아가자는 포퓰리즘적 선동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133쪽>

정유라 이대 부정입학 의혹이 역사 속으로 들어가자, 이른바 ‘조국 사태’가 터졌다. 인사청문회를 전후로 조 후보자 자녀의 입시를 둘러싼 의혹이 불거져 2019년 여름과 가을 정국을 달궜다. 학종의 전신인 입학사정관제의 ‘금수저 전형’ 실상이 낱낱이 드러났다. 스펙 품앗이와 표창장 위조 의혹 등까지 보태지며 논란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불법 여부를 떠나 그들만의 리그를 지켜보는 흙수저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진보 진영의 간판도 자녀의 입시에서만큼은 날것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에 지지 그룹에서도 실망이 쏟아졌다. 현 입시 체제가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 서민들이 신분 상승의 사다리라고 여기는 입시의 공정성에 흠집을 냈다는 점에서 파장이 컸다. 60여 년 사이에 벌어진 세 사건은 양태는 다르지만 권력자가 국민의 심리적 역린인 입시 문제를 건드렸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어디에 도착할지는 알 수 없더라도 일단 올라가 무엇인가를 쟁취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간절한 욕망이 집적된 사다리, 그 사다리를 흔든 것이야말로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린 죄였다.<226쪽>

『학종유감』
이천종 지음│카시오페아 펴냄│312쪽│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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