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지하철 6·7호선 상인들... “좀 어떠세요?”
쫓겨난 지하철 6·7호선 상인들... “좀 어떠세요?”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11.21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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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7호선 이수역 내 문닫은 상점.
서울지하철 7호선 이수역 내 문닫은 상점.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흥보가 기가 막혀/아이고 성님/동상을 나가라고 하니/어느 곳으로 가오리오/이 엄동설한에.” “아따 이놈아/내가 니 갈 곳까지 일러주랴/잔소리 말고 썩 꺼져라.” (‘흥보가 기가 막혀’ 육각수 )

한겨울에 동생을 모질게 내친 놀부는 대다수 어린이에게 ‘나쁜 어른’으로 기억된다. 재산분할에 관한 법적인 어떠함이 문제가 아니라 대안 없는 동생을 쫓아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 머무르기 원하는 상인들을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이유로 거리로 내몬 서울교통공사의 처사는 어떻게 기억될까?

최근 서울지하철 6·7호선 내 상점이 동시에 문을 닫았다. 상인들은 영업을 계속하기를 원했지만, 서울교통공사 측은 역사 내 상점 운영권을 맡겼던 GS리테일과의 계약이 종료됐다며 퇴거를 요청해 논란이 일고 있다.

먼저 지하철 역사 내 상점이 들어서기 시작한 건 2013년, 서울교통공사(당시 서울도시철도공사 )가 ‘지하철 6·7호선 유휴공간 개발’을 발표하면서다. 사용하지 않는 역무실 등 유휴공간 2만여㎡(상점 406곳 )를 상업공간으로 꾸며 임대한 것인데, 사업운영은 공개입찰을 통해 선정된 GS리테일이 담당했다.

문제는 상인들이 GS리테일과 계약할 당시 보장받은 임대기한이다. 애초 GS리테일이 서울교통공사로부터 받은 사업권 기한은 기본 5년에 추가로 5년 연장이 가능했기에 상인들은 10년 영업을 보장받는 줄로만 알고, 1~2억원가량의 인테리어·시설비를 들여 점포를 열었다. 하지만 잇따른 적자에 GS리테일은 계약 만기(지난 10월 24일) 6개월을 앞둔 지난 4월 서울교통공사 측에 계약 연장 포기 의사를 밝혔고, 6월에 상인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다만 일부 상인은 9월에서야 해당 사실을 전달받았다고 주장하는 상황.

다급한 상인들은 GS리테일 측에 “새 사업자가 정해지기 전까지 장사를 지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GS리테일 측은 “계약상 ‘갑’인 서울교통공사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응수했고, 서울교통공사 측은 “(법대로 ) 가게에 설치된 것(인테리어, 설비 )을 모두 뜯어낸 뒤 GS리테일 후임 사업자가 들어오면 재계약하라”고 통보했다. 상인들은 “장사를 한 달만 쉬어도 대출 원금을 갚지 못하는 상인들이 수두룩하고, 기계를 돌리지 않으면 망가질 우려가 크다”고 하소연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실 법대로만 하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추가 운영 의사가 없는 사업자(GS리테일 )가 계약 기한 만료를 끝으로 사업 포기 의사를 밝힌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계약서에만 명시하지 않았을 뿐 5년 연장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계약했기 때문에 ‘갱신기대권’을 두고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지만, 소상공인에게 소송은 부담일 수밖에 없는 상황. 여기서 진짜 문제는 서울교통공사 측이 조금만 노력했더라면 상인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서울지하철 7호선 이수역 내 문닫은 상점.
서울지하철 7호선 이수역 내 문닫은 상점.

GS리테일이 서울교통공사에 사업 포기 의사를 밝힌 건 지난 4월. 계약종료(지난 10월 24일 )까지 6개월의 시간이 있었지만, 서울교통공사는 “명도(소유권을 타인에게 인도 )가 끝나고 나서 입찰자를 찾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후임 사업자를 물색하지 않았다. 사실 민간사업자였다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바로 후임 사업자 물색에 나섰겠지만, 서울교통공사는 6개월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면서 어쩌면 막을 수 있었을 소상공인의 피해를 키웠다. 일부 상인은 이대로 나갈 수 없다며 버티고 있는 상황에 서울교통공사 측은 "지방계약법에 따르면 명도기한이 끝나기 전에는 사업자 입찰 공고를 낼 수가 없다. 이를 어길 경우 특혜를 줬다는 우려가 생길 수 있어 부득이한 상황이었다"는 입장.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를 통해 이윤을 얻은 것도, 시민을 보호한 것도, 상인을 배려한 것도 아닌 결과가 벌어지면서, 서울교통공사에는 “상인의 생계를 무시하고 ‘탁상공론식’으로 일을 처리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해인 수녀는 시 「좀 어떠세요」에서 “좀 어떠세요?/누군가 내게 묻는/이 평범한 인사에 담긴/사랑의 말이/되새김하게 되네//좀 어떠세요?/내가 나에게 물으며/대답하는 말/몸은 힘들어도/마음은 평온하네요”라고 했는데, 점점 추워지는 요즘 임차인들은 “어떠세요”라는 물음에 뭐라 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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