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펭귄 ‘펭수’가 깨부순 다양한 클리셰들…
첫 번째 펭귄 ‘펭수’가 깨부순 다양한 클리셰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11.18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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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온 펭귄 '펭수'의 성장기를 다루는 EBS 프로그램 '자이언트 폥 TV' [사진= EBS]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영어에는 ‘첫 번째 펭귄’(first penguin)이라는 관용어가 있다. 수많은 펭귄들이 천적이 무서워 눈치만 볼 때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펭귄에서 비롯된 말이다. 비록 첫 번째 펭귄은 바다표범이나 물개에게 잡아먹힐 확률이 가장 높지만, 먹이를 가장 많이 먹을 가능성도 높다. 반면, 늦게 뛰어드는 펭귄은 먹이를 많이 먹지 못하며, 뛰어들지 못하는 펭귄은 굶어 죽게 된다. 성공의 조건을 분석한 책 『보이지 않는 차이』에서 작가 한상복과 연준혁은 불확실한 세계에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첫 번째 펭귄’이 되기를 권한다.  

최근 ‘첫 번째 펭귄’이 이룬 성공이 돋보인다. 화제의 인물(?)인 EBS의 펭귄 캐릭터 ‘펭수’다. 교육방송 EBS가 지난 4월 자사 프로그램 ‘생방송 톡! 톡! 보니하니’의 10분짜리 코너 ‘자이언트 팽 TV’와 동명의 유튜브 채널로 처음 선보인 이 캐릭터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8,90년생 성인들에게까지 ‘직통령’(직장인들의 대통령)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수는 8개월만에 60만명에 육박했으며, 지난 14일에는 관련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증권가에서는 펭수 관련 수혜주 가격이 급등하는 등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펭수가 ‘첫 번째 펭귄’인 이유는 단지 그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한국까지 헤엄쳐온 첫 번째 펭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키가 2m가 넘는 이 펭귄은 기존 방송의 갖가지 클리셰를 전위적으로 깨부순다.

일단 외양적으로 펭수는 일반적인 ‘귀여운’ 캐릭터들과 다소 생김새가 다르다. 팔다리가 짧고 얼굴이 큰 것은 비슷하지만, 눈에 검은자(각막)보다 흰자(결막)가 더 많아 ‘동태 눈깔’로 불린다. 통상적으로 귀엽다는 평을 듣는 캐릭터들은 흰자가 거의 없거나 흰자보다 검은자의 비중이 크다. 또한, 귀여운 캐릭터들이 일반적으로 중성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과 달리 펭수는 걸걸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를 뿜어낸다.    

“이런 펭귄 처음이지?”라는 질문처럼 성격도 교육방송의 캐릭터라기엔 매우 까칠하다. 펭수는 아이든 어른이든 자기 얼굴을 만지는 이에게 크게 화를 낸다. “뽀로로 선배를 이기기 위해 EBS에 왔다”고 말하며 EBS 김명중 사장에게 “김명중 밥 한 끼 하자”고 말하는 등 권위에 도전하기도 한다. ‘지상파에서 이런 말을 해도 되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는 말을 쏟아낸다. 

지상파 방송에서는 전에 없던 ‘관종’(관심에 목매는 사람이라는 의미, ‘관심 종자’의 줄임말) 캐릭터이기도 하다. 여느 인터넷 방송인들처럼 펭수는 어떤 행동이든 별나게 한다. 자기소개를 요청하면 랩을 하고, 뜬금없이 비트박스를 하고 요들송을 불러댄다. ‘SWAG’이나 ‘펭하’ ‘별다줄’ 등 소위 ‘인싸’(‘인사이더’라는 뜻으로,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펭수는 “누구라도 내게 관심을 줬으면”이라고 말하며 만나는 이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의 구독을 부탁한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캐릭터만이 아니다. ‘자이언트 팽 TV’ 제작진은 EBS 개국 이래 지금까지 공고하게 구축된 ‘교육방송’이라는 장르를 ‘예능프로그램스러운’ 연출과 편집으로 깨버린다. 예를 들어 ‘관종 펭귄, 초등학교 습격? 펭수, 학교 가다!’라는 콘텐츠에서는 한 아이가 “펭수는 도움이 안 돼”라며 펭수에게 공을 던진다. 그리고 해당 장면에는 “거만해진 펭수에게 친구들이 선사하는 진정한 교육방송”이라는 자막이 적힌다. 이러한 자막과 연출은 기존 EBS에서는 없던 것이다.    

지상파 방송국 중에는 가장 적극적으로 유튜브 등 신생 미디어를 공략하고 있다는 점도 펭수를 ‘첫 번째 펭귄’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꿈인 펭수는 구독자 100만명 이상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피지컬갤러리’와 ‘흔한남매’, 유튜브 구독자 57만명을 보유한 웹툰작가이자 유튜버 이말년, SNS 스타 전지영, 스타강사 정승제 등과 함께 방송하며 이들의 팬을 끌어들이는 식으로 세를 불린다. 또한, 신생미디어뿐만 아니라 최근 펭수는 MBC와 SBS, KBS 방송에도 적극 참여한다. 펭수로 인해서 지상파 방송국이 서로 협력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남극에 있는 친구들이 먹이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사람들이 바다를 지켜줬으면 좋겠어.” “일회용품 사용하면 미세플라스틱 때문에 안 돼.” “성공은 부유함으로 따지지 않아.” ‘첫 번째 펭귄’ 펭수는 갖가지 클리셰를 깨버리기도 했지만, 교육방송 그 본연의 목적에 맞는 교육적인 내용 역시 전한다. 그리고 당연히 교육방송 EBS의 영향력은 그 어떤 때보다 커졌다. ‘첫 번째 펭귄’ 펭수의 성공이 경쟁으로 어려워져만 가는 미디어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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